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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른 신앙인격이 바른 실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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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인격이 바른 실력을 드러낸다

감정 다스리지 못해 이단적 사상에 이끌린 터툴리아누스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담임).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레렌스 터툴리아누스(터툴리아누스의 본명)는 150-155년경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부유한 로마군 백부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 힘입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수사학, 철학(스토아 철학), 그리고 법학을 심도있게 공부했고, 드디어 국가변호사가 돼서 사회 속에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됐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이방문화에 철저히 물든 가풍에 영향을 받아 심하게 타락해서 도덕적·윤리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부끄러운 생활을 하게 됐다. 그에게 주어진 탁월한 지식과 권력, 돈, 그리고 가정 배경이 고대 사회의 젊은 귀족인 터툴리아수스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터툴리아누스를 만난 당시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크리스천 지도자로서 밝은 미래를 만들 고상한 인격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자손손 내려오는 막강한 권력을 남용해 사회와 국가를 시궁창에 빠뜨릴 공공의 적으로 추정하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의 이웃들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그런데 고대 아프리카의 귀족 방탕아, 터툴리아누스의 인생에 획기적인 대전환을 이룰 만남이 일어났다. 그의 나이 30대 말이 되던 185년-195년경 어느 날, 술에 취해 길거리를 미친 개처럼 헤매고 있을 때 천재 청년 터툴리아누스에게 성경을 낀 무명의 전도자가 접근했다. 전도자는 터툴리아누스에게 예수와 회개를 가르쳤고, 급기야 그는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악한 죄를 모두 기억하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굵은 눈물로 회개했다.

무명의 길거리 전도자를 통해서 소문난 시대적 탕아가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더 이상 사회의 악동이 아니라, 매우 거룩한 청교도 크리스천이 됐고, 얼마 후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인 장로로 선출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그는 로마 주교 칼릭스투스(217-222)가 ‘간음죄를 범한 자가 회개하면 다시 교인의 자격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선심을 쓰자, 그의 탁월한 청교도적 논문 <정숙에 관하여>를 통해 로마 주교의 비청교도적 사상을 신랄히 비판했다. 또 당대 도시의 극장 공연물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것들이 많았고, 원형극장에서 자주 벌어진 검투사들의 경기들은 극도로 잔인했다. 회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극장의 공연과 검투사의 경기를 자주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신실한 크리스천이 된 터툴리아누스는 그것들이 매우 잔인하고 저급한 비종교적 인간들의 악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적으로 문란한 공연물과 잔인한 검투사의 경기를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더 이상 관람하지 못하도록 건전한 사회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심지어 극장의 공연이나 경기장의 검투를 보는 자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무

명의 길거리 전도자 때문에 크리스천이 된 터툴리아누스에게서 이젠 방탕한 삶의 흔적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주후 222년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여느 엘리트 기독교인 철학자들처럼 고위 성직에 오른 일은 없었지만, 당시 교회 공동체 속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됐다.

그러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다스리던 202년경 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해일이 북아프리카를 덮쳤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정통 기독교인은 박해가 두려워서 모두 꼬리를 내리고 도주하였는데, 이단으로 알려진 몬타누스주의자들은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보고, 그의 가슴 속에 있는 격한 감정이 갑자기 급상승하게 됐다.

터툴리아누스는 감정조절에 실패하고 이단 몬타누스주의자로 급히 개종한다. 터툴리아누스는 206-208년경에 이르러 용기 없는 기존 정통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오직 몬타누스주의를 최고의 정통종교로 외치는 맨발의 이단 전도자가 되고 말았다. 그가 만년에 감정에 치우쳐 몬타누스주의의 영향을 받지만 않았더라면, 분명히 고대 정통 교회 공동체의 위대한 지도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과 철학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천재 학자 터툴리아누스는 부족한 인격으로 말미암아 격해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하나님 주신 탁월한 지식과 능력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고대 사회의 방탕아 터툴리아누스를 신실한 천재 크리스천 지도자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신실한 크리스천 지도자는 탁월한 지식이나 교리실력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다. 순간의 격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 인격이 있을 때에만 성공적인 크리스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천재학자 터툴리아누스는 감정조절에 실패해 크리스천 지도자의 길에서 비참하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터툴리아누스를 능가할만한 탁월한 신학적, 철학적 지식을 지닌 목회자들이 많다. 국내외 유수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교회 및 신학대 일선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을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얼마 전 경기도에 있는 중형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광고에 지원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국내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21세기는 교회에도 고학력이 보편화된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교회 공동체와 노회, 나아가 총회 석상에서 지도자들의 격렬한 감정싸움은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학력이 높아지고, 탁월한 실력을 가진다고 저절로 신앙 인격이 고양되는 것은 아니다. 탁월한 신학 실력을 머리 속에 쌓기 전에 심장 속에 파고든 악한 분노부터 신앙 인격으로 치유해야 한다. 바른 신앙 인격만이 바른 실력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기억해야 한다. 터툴리아누스 같은 불행한 지도자를 한국교회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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