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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수와 진보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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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화해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우리 사회는 지난 십수 년을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해 왔다. 그것은 교계의 현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붓을 드는 사람마다, 입을 여는 사람마다 보수의 편에 혹은 진보의 편에 서서 상대방을 나무라는 사이 우리는 모처럼 굴러가기 시작한 사회 동력의 엔진을 꺼트린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금년만이라도 이런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전기가 되기를 빌어본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온전하게 보수적이고 어떻게 온전하게 진보적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외국의 한 신학자가 자신이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면서 생명의 보호를 위해 낙태 반대를 외치던 '친 생명주의자들'(pro-lifers)이 무수한 생명을 전장으로 밀어내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지 못한 것을 '온전하게 친 생명적'(completely pro-life)이지 못하다고 비판한 글을 읽은 생각이 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의 경우 생명 낙태 문제에 대해서조차 한번도 보수교계가 목소리를 모아 생명 옹호의 함성을 외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반대로 인권 문제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이 땅의 진보 인사들이 한번도 북한의 인권 현실에 대해 피맺힌 경고를 보내고 무수하게 짓밟히는 북의 민초들이나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좌절을 동정하는 목소리를 들은 일이 없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온전하게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없었다는 정직한 반성에서 우리의 대화를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의 신학의 배경, 우리가 어울린 친구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저마다의 상황에 적응하면서 혹은 보수적이 되고 혹은 진보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우리 민족의 내일을 평화롭게 소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의 내일을 건강하게 소망하고 싶다는 그 샬롬의 비전 아래 함께 기도하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그리고 설혹 견해를 달리하는 어젠다가 무수할지라도 우선 함께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의 과제부터 동역을 시작한다면 어느날 우리는 우리의 차이가 크게 대수롭지 않았음을 고백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그때 '좌빨'도 보수 '꼴통'도 아닌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한 백성으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반듯하게 길 가는 암소의 걸음을 꿈꾸어 본다. 기축년 우직한 소의 걸음을 다시 배우도록 하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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