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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와 너의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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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행복한 동행  
 
- 김원배 목사 (목포 예원교회)
 

옛 조상들은 삶이 하도 서러워 '설'이라고 했다는데 올 설날은 폭설로 인해 귀향길이 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고향으로 향하는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곳, 고향을 찾게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향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진정한 사랑과 만남이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마모되고 상처받은 인격을 다시 추스르고 진정한 인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은 각박하다. 우리가 고향에서 맺었던 사랑의 관계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서로를 자기의 목적을 위해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전쟁터와 같다.

유대교 철학자로 현대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을 통해 인간들이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대상화함으로써 빚어지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진단했다. 그는 인간을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 파악했다. 그런데 그 관계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나-너'라는 관계와 '나-그것'이라는 관계이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맺고 있는 대부분의 관계는 '나-그것'의 관계이다. 인격은 다른 인격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인격이 되는데 대부분 우리의 만남은 '나-그것'의 관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인간을 생산이나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현대문명의 메커니즘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참된 삶은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것이 불가능하면 근원적인 기쁨과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부버는 인간의 진정한 삶은 '영원한 너'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에 이르게 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영원한 너이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나가 되어 진정한 너를 만날 수 있는 출발선상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모래 위에 지어진 집처럼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곧 무너져내린다. 우리가 맺는 대부분의 관계는 이 같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생이란 결국 관계의 집인데 모래 위에 세워진 우리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란 권력과 부, 명예를 근거로 이 세상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영원한 너와의 참된 만남을 바탕으로 진정한 '나-너'의 만남의 집을 지어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진정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만리 길 나서는 날/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운 때에도/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 기독교인은 가족과 이웃을 향해 '그 사람'이 되어 '나-너'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 역사를 갱신하자. '나-너'의 진정한 사랑과 만남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삶의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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