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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J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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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형
 
- 허상봉 목사(동대전성결교회). 


J형, 오랜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무거운 짐을 벗고 안식하는 J형을 생각하며, 지난 날 함께하였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회상하여 봅니다. 또한 만날 때마다 “교회에 짐이 되는 목회자가 되지 말고 섬기는 목회자가 되고, 유명한 목사가 되려고 하지 말고 신실한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충고를 주었던 일을 생각하며, J형의 바람대로 나는 목회자의 길을 바르게 가고 있나 자문하여 봅니다.

오늘 따라 문득 J형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웬지 마음이 끌리는 책 한 권을 사서 읽었습니다. 유진 피터슨과 마르바 던이 함께 지은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입니다. 원제는 ‘The Unnecessary Pastor’입니다. 그런데 번역하는 이가 그렇게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달리 번역하면 ‘쓸모없는 목회자’라 할까요. 목회자로서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지만, 한 번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J형! 책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J형의 선한 충고가 생각났습니다. 서문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약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 내용을 J형에게 보내 드리고 싶었습니다. 평상시 J형이 제게 주었던 말들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J형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하늘나라에서도 한번 읽어 보아주십시오.

“많은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기술과 경험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수집된 자료들은 전산화되어 주일학교 교실을 도색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때는 자료들을 뒤적거려 적절한 인물을 찾아낸다. 게다가 큰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고, 문서 업무 수행에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고, 재정적인 능력을 겸비하며, 꽃꽂이를 할 수 있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중고등부 교사들을 찾아내려 한다. 물론 교회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으므로,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해서 그들을 적절히 현장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목회자는 그런 일들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사역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문제는 공동체 속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찾고 그들의 수준을 결정하는 이런 방법은 목회자로 하여금 교인들을 기능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이 신앙 공동체와 관계성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능력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목회서신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관계성 속에 깊이 뿌리내린 남자와 여자로 언급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구성원들의 능력이 아닌 올바른 성품을 기대했다.

목회서신에는 다섯 가지의 사회적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 시민과 국가, 그리고 열 가지 사회적 신분이 제시되었다. 젊은 남자, 젊은 여자, 늙은 남자, 늙은 여자, 과부, 감동, 장로, 집사, 부유한 자. 사람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호칭은 하나도 없다. 유용성이나 능력이나 가치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모든 호칭들은 신앙 공동체 속에서 성품이 변화될 것을 지도하고 격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위해 사용되었다.

사람들을 기능적으로 판단하면, 그들은 기능적인 단위로 변하고 만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능력에 따라 구분하지 말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인식해야 한다.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조직체를 구성하는 업무가 아니다. 공동체 건설은 관계성에 바탕을 둔 사역이다. 교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사랑과 용서와 소망과 은혜를 베푸는 선함과 바른 습관 위에서 사역해야 한다.

파스칼은 이런 사실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우리는 사람 다루는 일을 평범한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 사람이 오르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무지 음계가 맞지 않는 건반을 가진 기묘하고 변화가 심한 오르간이다. 평범한 오르간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이상한 오르간을 평범한 음계에 따라 조율하지 못한다. 음계의 구성이 어떤지 먼저 알아야 한다.

교회 질서를 세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우리는 그 질서가 세워져야 하는 특정한 형태를 알지 못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교회 질서는 없다. 교회를 조직하는 데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바람직한 이유 때문에 그런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로들은 디도서에서, 집사들은 디모데에서 언급된다. 감독과 장로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우리는 감독과 장로와 집사가 지금 시대의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신약 성경 속에서 그런 직분들의 직무 설명서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에서 마음대로 이탈해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에 몰두하고, 자신들의 관리 방식과 조직의 목표를 우선시한다. 성령님께서 인격적으로 은사를 베푸신 이들을 기능적으로 이용하려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직무 설명서나 은사 확인서를 찾는 일을 그만둔다면, 교인들의 진정한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제시된 장로들을 위한 규율을 아래에 실어 놓았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들을 위한 규율은 아래와 같다. 여덟 가지는 긍정적이고 다섯 가지는 부정적인 항목이다.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위의 여러 항목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직무 내용 설명서나 능력 수준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감독의 규율 가운데 마지막 항복은 다소 예외다.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항목이 말씀에 따라 변화되고 다듬어진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성령적인 방향과 변화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본다면, 가르치는 일이 기술보다는 인격의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목회자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그가 지도자로서 적합한지 부적합한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성경에서 직분자의 직무 내용 설명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인격 형성에 대한 관심이다.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온전하게 인도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이 목회자의 직무다. 그 지도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도자들은 기능이나 그들의 ‘은사’에 따라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의 인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신앙 공동체에서 지도자를 양육하는 사역에 임할 때 목회서신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고 신실한 믿음을 지닌 성숙한 사람을 먼저 찾을 것이다.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원인이 사람들을 기능적으로 구분하는 그릇된 리더십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리더십이 더욱 ‘효과적인’ 수준으로 나아지면, 공동체의 진정한 능력은 점차 감소된다.

신앙 공동체는 사람을 사용하는 명령에 의해 발전한다. 성령님께서는 성숙한 관계성을 유지한 인물들을 사용하신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마음의 습관을 지닌 이들이다.

신앙 공동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오늘날 리더십에 대해 설명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흔적 없이 내버려야 한다. 카리스마에 관한 언급은 모두 잊고 인격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교회에서 지도자를 택하고자 할 때에는, 그리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는 인물, 평범한 인물, 깊은 감명을 주지 못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은 세상의 기능주의에 물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자신들이 행한 일이나 업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숙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반드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를 구하라. 칭찬을 받으려 하고, 정력적으로 위대한 사업을 추진하며, 교인들 속에서 활력소가 되려는 이들은 바람직한 리더십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런 종류의 리더십은 분명 유익하고 많은 유익을 끼친다. 하지만 정작 공동체를 바로 세우려할 때에는 진정으로 사랑이 그 속에 역사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치가나 최고 경영자가 높이 평가하고, 눈에 두드러지고 ‘효율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은 신앙 공동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레데 섬에서 미노스와 테세우스는 그런 종류의 리더십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서 일반화된 그런 신화적인 지도자들과 신앙 지도자들을 동등하게 여기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든 눈에 띄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을 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든 하지 않던 간에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가는 그런 사람들을 찾았다. 목회자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상이한 기준과 목표를 가지고 사역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세울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구하려는 잘못을 범한다.

하지만 평범한 크리스천들만 눈에 띄는가? 그들을 소중히 여기라. 그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라.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에 도움이 될 인물들을 찾을 때, 뛰어난 업적을 지닌 사람들을 선호하지 말라. ‘계획하는 일이 아무리 복잡하다 하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건전하고 순수하며 깨끗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인물들을 발굴하여 그들에게 일을 맡기라.’

현대 문화의 중요한 가치들을 버리지 않고 붙잡고 있으면, 공동체는 ‘교회 쇼핑객’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는’ 교회를 찾아다니고, ‘좀 더 앞선 음악들’을 사용해달라고 교회에 요구한다.

공동체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속박하려 하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다른 공동체로 떠나간다. 이런 모습이 “교회가 된다”라는 말의 의미는 아니다. 요즘 목회자들은 교회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마케팅이란 용어로 인해 옳은 길에서 많이 벗어났다. 목회자들이 마케팅이란 개념을 교인들의 마음에서 몰아내는 그 순간, 교인들의 마음은 한층 성숙한 단계에 이를 것이다.

제자도는 마케팅의 대상이 아니고 거래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욕구와 기분, 또는 기호에 맞춰 ‘종교적인 재화와 용역을 취급하는 판매업자’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전하기 위해 ‘파송된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복음 전파를 위해 사역하고 역경이 닥쳐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을 선교사들을 길러내야 한다.

갈등과 긴장, 혼란이나 문제가 일어나는 시기는 진정한 신앙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여기에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성경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온 힘을 쏟는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J형! 목회상황이 J형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와 같지 않습니다.

교회도 옛날에 비하여 거룩함과 순수함의 본질에서 이탈되어 가는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탁월한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을 잘 감당한 J형이 그립습니다. J형,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 땅위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오늘 따라 목회자로서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가까이서 선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J형이 더욱 그립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고 다음에 또 저의 안부와 함께 고민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J형,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이만 맺습니다. 주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평안히 안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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