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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리게네스의 열정과 反세속주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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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게네스의 열정과 反세속주의 신학 

‘넋두리하는 종교’라는 편견을 ‘고급 종교’로 변화시켜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주후 1세기 나사렛 예수를 통해 시작된 기독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서 ‘넋두리하는 종교’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물질적으로 궁핍해서 생활이 어려운 가난한 자들과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무식한 자들, 그리고 가정과 사회 속에서 상위 계층에게 무시당하는 여자들이 모여서 한풀이나 하는 비속한 종교라고 천시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있는 정통 유대지역 사람들의 세련된 유대교와는 다르게 초창기 기독교는 못 배우거나 돈이 없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갈릴리 지역 사람들이 믿는 천한 종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후 3세기경에 이르러 기독교회는 세상에서도 탁월한 인물들이 대다수 모여서 활동하는 ‘고급’ 종교로 그 위상이 상당히 바뀌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반전은 탁월한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지적인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방인과 이단들마저도 탁월한 기독교 학자인 오리게네스를 존경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머리에서 나온 탁월한 학식과 강인한 실천은 초기 기독교 신학과 교회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오리게네스(Origenes)는 18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하고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201년 순교한 부친 레오니데스 (Leonides)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이 순교하면서 모든 가산을 국가에 몰수당해, 그의 어머니는 가냘픈 몸으로 7명의 어린 자녀를 혼자 양육해야 했다. 그때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문학을 가르치고, 사본을 필사하는 일을 하면서 홀로된 어머니를 도왔다. 심한 박해가 있는 동안 많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자 교회에는 교리를 가르칠 교사가 턱없이 부족해졌고, 오리게네스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성실성이 인정돼 교회학교 교장으로 발탁된다. 그때를 기점으로 교육과 연구, 저술에 바친 그의 오랜 인생이 시작됐다.

오리게네스는 교장이 된 이후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절대적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신학을 연구하다 잠이 올 때면 침대가 아닌 차가운 맨바닥에서 일부러 잠을 청했고, 예수의 명령대로 옷 한 벌만을 평생 걸치고 살았으며, 신발도 전혀 신지 않고 맨발로 추운 겨울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마태복음 19장12절의 말씀대로 자신의 거룩한 삶을 방해하는 남근을 스스로 거세하기도 했다.

주후 3세기의 기이한 대학자 오리게네스는 시간이 나는대로 날마다 7명의 비서들에게 머리 속에 든 학문을 구술해 2천권이 넘는 탁월한 저작을 세상에 남기게 된다. 특히 <헥사플라>라는 작품은 본문 비평의 효시라고 할 만한 대작이었으며, <켈수스를 논박함>이란 책은 이교도들의 공격에 대해 기독교를 옹호하는 변증서이고, <제1원리에 대해>는 최초의 조직신학 책이라 할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이다. 오리게네스는 이 책에서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창조, 영혼, 자유의지, 구원, 성경 등 기독교 신앙 전반에 걸친 주제들을 면밀히 논리적으로 서술했다.

한편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해 어떤 본문이든 문자적인 의미·영혼의 덕을 세우는 도덕적 의미·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숨은 의미를 담고 있는 풍유적(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강론, 중세기 풍유적 성경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말년에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다른 악한 물질세계론, 영혼선재론, 육체적 부활부인, 성부 하나님 물질세계 창조 불가론, 성자 예수의 십자가상 신성 미손상론 등을 주장해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후 3세기 역동적으로 활동한 탁월한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 기독교 신학의 조직적인 발전과 더불어 예수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훗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부들은 오리게네스의 다양한 사상 편력과 저작들, 그리고 헌신적인 말씀 실천 때문에 세상과 교회를 향한 그의 놀라운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몸에 밴 검소하고 신실한 삶은 성경과 교회를 부인했던 당대의 세속적인 학자들의 마음마저 움직여 기독교로 개종케 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주후 3세기 이 땅에 역동적으로 활동한 대학자 오리게네스의 신학 사상은 건전한 교회의 정통 신학과는 상당한 부분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자료나 도구가 거의 없었던 열악한 초대교회 당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신학을 연구한 그의 열정만은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두려울 정도로 철저한 오리게네스의 금욕생활은(그것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세속주의에 물들어 참된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 교회공동체에 강력한 경각심을 던져주고 있다. 또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적인 성장 지상주의를 교회의 주 목표로 삼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신학자들은 부지런한 신학연구에, 현장 목회자들은 철저한 성경 중심의 강력한 실천에 전력하라는 오리게네스의 절규하는 음성을 우리는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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