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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수환 추기경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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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현상  
 
-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우리를 심히 놀라게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왕을 포함한 누구의 죽음도 이렇게 대대적인 애도를 받은 일이 없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한 종교 지도자가 이런 관심을 모은다는 사실은 그래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촛불 시위가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 추앙은 무엇보다도 그의 뛰어난 인품과 행적 때문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부패세력을 과감하게 비판할 수 있는 용기와 정의감, 극좌·극우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판단능력, 사심 없는 헌신과 겸손, 그리고 장기를 기증하고 인공적인 생명연장을 거부하며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까지 그는 실로 범인들이 가지거나 행사할 수 없는 미덕들을 골고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미덕 못지않게 크게 작용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몰랐을 때는 매우 훌륭한 줄 생각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온갖 약점들이 다 드러난 지도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소위 지도자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김 추기경은 다른 지도자들 못지않게 언론에 많이 노출됐지만 흠잡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국민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가 추기경이고 다른 어느 종교 지도자보다 더 독재 정권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로 그는 세상의 주목을 끌었고, 그 주목이 오히려 그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가 추기경이 아니었다면 그의 비판적 발언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큼 주목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었고 최연소 추기경이었다는 사실도 그를 그만큼 알려지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을 갖지 않은 성직자란 사실은 그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로 부상하는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 자녀 교육, 부부간의 갈등 같은 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보편적인 가치와 공익을 위해 시간과 관심을 바칠 여유를 많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정을 갖지 않기로 서원한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결정이고 큰 희생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번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고 나면 가정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훨씬 쉽게 선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천주교나 불교에서 성직자가 독신으로 남도록 하는 제도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독신이라 하여 모두 김 추기경처럼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한 성직자들보다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시민들과 같이 개신교인들도 그를 존경하고 그의 서거를 애도하지만 동시에 그가 받는 추앙이 개신교를 부끄럽게 하고 큰 도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개신교는 제도적으로 김 추기경과 같은 인물을 배출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한경직, 장기려, 김용기같이 훌륭한 지도자들을 배출했고 그들의 영향은 지금도 계속 살아 있다. 최근에 이런 분들이 없는 것은 우리 개신교의 정신적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 존경할 수 있는 인품과 행적을 가진 분들보다는 세속적인 잣대에 의하여 많은 것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따르는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결코 김 추기경과 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흠모와 존경이 김 추기경을 우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분이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추앙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일 것이다. 그를 기리는 것만큼 우리는 그를 배우고 그와 같이 살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이미 그의 모범에 따라 장기기증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고 그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 준다. 개신교에게도 한번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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