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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은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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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 이철환 (동화작가)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사촌 형이 있다. 형과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명절이 되면 만났을 뿐, 자주 만난 것도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중학생이던 형은 만화가게로 나를 데려가 떡볶이 한 판을 사주었다. 한 접시가 아니라 한 판이었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떡볶이를 그렇게 흡족히 먹어본 적이 없었다. 형은 깡패였고, 결국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배와 팔에 보기 싫은 흉터도 여러 개 있었다. 형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을 졸업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형은 두 번인가 나에게 용돈을 주었다. 1000원이 아쉬웠던 시절이었고, 누구도 나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었기에, 형이 준 몇 만원의 돈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느 설날이었다. 큰집 한쪽 방에서 내가 슬며시 잠들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나갔다. 형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형은 맛있는 음식을 말없이 내 앞에 놓아주곤 했다. 몇 년 전, 형이 하던 사업이 부도났다. 집에도 들어갈 수 없는 형을 어찌어찌 해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1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형에게 주었다. 형에게 미안했지만, 지갑에 있던 전부였다. 나를 바라보는 형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후 어느 날, 형이 과로로 쓰러졌다. 혼수상태에 빠진 형에게 갔을 때, 형은 병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형의 손을 잡고 있는데 눈물이 나왔다. 사촌 누나가 형의 몸을 흔들었지만, 형은 끝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내가 잡은 형의 손에서 살며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형은 하늘나라로 갔다. 형의 어린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이 더 생각났다. 사촌이라는 혈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형이 사주었던 떡볶이, 용돈, 따스한 이불, 내 앞에 놓아준 음식…. 어쩌면 이런 작은 것들 때문에 그를 잊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 잡은 손에서 느꼈던 인간의 연약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슬프게 떠나간 사람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끝끝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다. 사람은 가고, 세월은 가도, 사랑은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깃발처럼 펄럭인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 118:25∼26)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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