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토요 편지] 너는 내 것이라

첨부 1


[토요 편지] 너는 내 것이라  
         
- 이철환 동화작가 
 

내가 어린 시절, 단칸방의 궁핍한 살림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어느 새벽이었다. 갈라진 방바닥 틈새로 연탄가스가 들어왔다. 눈을 떠야 한다고,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연탄가스를 마신 나는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그때 형과 누나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누나의 가파른 신음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방문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 어머니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어머니는 내가 있는 곳까지 기어와 나를 끌어안으셨다. 어머니는 방문부터 활짝 열었다. 날이 밝고 정신은 돌아왔지만 점심 때가 지나도록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내 머릿속을 쪼아댔다. 아버지는 방바닥 장판을 모두 걷어내고 온종일 악마의 구멍을 메우셨다. 시멘트가 채 마르지 않은 차가운 방에서 우리 가족은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두꺼운 이불 속에 잔뜩 몸을 움츠리고 눈만 간신히 내민 가족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섯 식구의 얼어붙은 입에서 하얗게 김이 뿜어져 나왔다. 뼛속까지 떨려왔지만 간밤에 겪었던 악몽에 비하면 견딜 만했다. 

불을 끄기 전, 어머니는 누나에게 노래를 시켰다. 누나는 '즐거운 나의 집'을 불렀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낡은 벽지를 향해 돌아누웠다. 아버지 어깨가 조금씩 흔들렸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는 못난이 삼형제 인형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 연탄을 갈고 방으로 들어온 어머니의 얼굴이 어두웠다.

"엄마, 연탄가스 또 들어오면 어떡하지?" "아버지가 다 고쳤으니까 이젠 괜찮을 거야. 연탄불이 활짝 핀 뒤에는 가스가 안 나오거든. 아무 걱정 말고 자도 돼…." 파리똥이 붙어 있는 흐린 형광등이 꺼지고 한참이 지났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맡 작은 창문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들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캄캄한 방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잠들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였지만 눈꺼풀은 무겁게 감겨 왔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 사이 창밖으로 새벽빛이 느릿느릿 다가왔다. 방 끝에 누워 있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새벽하늘에는 달빛도 별빛도 없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새벽별이 되어 자식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감겨오는 눈을 뜨고, 다시 또 뜨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