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

첨부 1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
 
- 양승훈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학문의 세계는 논리의 세계입니다. 논리적으로 적합한 주장일수록 사실성, 혹은 신뢰도가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논리를 전개하는 대상, 논리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근거나 기준에 따라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자연과학은 논리를 전개하는 대상이 물질세계이고, 논리적 적합성의 근거나 기준이 직접적인 실험이나 관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사회 구조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 비해 물질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은 주관이나 편견이 개입될 소지가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국내외적으로 이슈가 되는 기원 논쟁은 상당 부분 자연과학적 측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원 논쟁은 비단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같은 창조론자들 내에서도 뜨겁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장의 차이로 인한 단순한 논쟁에 그치지 않고 신앙적 확신으로 인한 비난까지 난무하여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유독 기원 논쟁에만 신앙적 요소가 강하게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원 논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는 과학적 사실과 성경적 진리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이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되고(investigated), 세워지고(established), 입증됩니다(substantiated). 과학적 사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관측자의 주관이나 선입견과 독립적인 것을 이상(理想)으로 생각합니다. 즉 정확하게 이루어진 실험이라면 누가 어디서 실험을 하는지에 무관하게 동일한 결과를 얻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이 결과에 동의합니다. 그러고도 과학적 사실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문가 심사(peer review)나 인증제도(accreditation)와 같은 사회적, 제도적 장치들이 있습니다.

같은 실험 결과가 사람들마다 다르다고 해도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습니다. 다른 결과를 얻은 사람들에 대해 성토 혹은 분노하기보다 실험이나 관측, 조사가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데이터가 정확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더 정확한 연구를 합니다. 한 예로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몇 년 전에 자신의 주장을 담은 <아인슈타인의 허풍>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무도 그 분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말 그 분의 주장이 맞는지, 아니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볼 뿐입니다.

이해 비해 성경적 진리는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역사, 계시, 증언 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한 예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은 진리 선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부정직한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 아니라 바르지 않은 것이고, 비윤리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도 일종의 진리 주장에 해당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창조주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의 집을 공짜로 빌려서 살면서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한탄한 것입니다(사1:3).

이사야 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무신론자들의 모임인 영국인본주의자협회는 영국 전역을 운행하는 버스 중 800대에 “하나님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제 걱정을 멈추고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는 광고판을 설치했습니다. 이 광고를 후원했던 옥스퍼드대학의 무신론자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애초에 “신은 없다”라는 단정적인 문구를 원했지만 버스 광고회사가 “영국의 광고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선 단정적인 주장을 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사람들은 자기 주인을 몰라보는 치매에 걸린 것이지요.

그러면 과학적 사실과 성경적 진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두 가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면서도 상호보완적입니다. 사실 주장은 내용의 정확성 여부에 관심이 있지만 진리 주장은 내용의 옳고 그름에 관심이 있습니다. 진리 주장은 규범적(normative)이지만 사실 주장은 기술적(descriptive)입니다. 사실 주장은 귀납적이지만 진리 주장은 선언적이요 연역적입니다. 사실 주장은 윤리와 무관하지만 진리 주장은 윤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일 뿐이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바르지 않은 사람, 때로는 비윤리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을 구별하는 것은 창조-진화 논쟁에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기원 논쟁의 상당 부분은 사실과 진리를 혼동한 것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사실에 대한 지식이 다르다고 해서 분노하는 것은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을 혼동한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천지와 그 가운데 모든 생명체들을 누가, 무엇을 위해 창조했는가 하는 것은 진리 주장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확하게 언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우주와 생명체를 창조했는가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요, 사실 주장의 대상입니다. 우주가 젊은가, 아니면 오래 되었는가에 대한 주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라는 의미지요.

우주/지구가 6천년이어야 한다거나 140억년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규범적 진술로서 사실 주장을 진리 주장과 혼동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주/지구가 젊은지, 오래 되었는지는 연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진리 주장을 기술적으로 진술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사실 주장을 규범적으로 진술하게 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집니다. 현금의 기원 논쟁의 상당 부분은 바로 사실 주장을 진리 주장과 혼동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의 혼동에 더하여 이 두 주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해도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우주/지구의 연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엄격한 과학적 사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지구가 오래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과 타협한 것이고, 진화론은 무신론이고, 무신론은 비성경적이며 비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기원논쟁의 폭력성이 생겨납니다.

창조주가 없다는 주장이나 이 세계에는 아무런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주장은 비진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한 것이라기보다 부정직한 것이고 나쁜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 방법이나 창조 시기에 대한 의문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자 사실 주장의 영역입니다. 기원 논의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실 주장과 진리 주장을 혼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두 가지를 잘못 연관 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주장에 대해서는 성실한 연구자세가 필요하고, 진리 주장에 대해서는 겸손한 경청자세가 필요합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