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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옹두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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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두리 손  

- 김석년 목사(서초성결교회)
 

두 주 전 독일 방문 중에 사랑하는 여동생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삼형제 사이에 낀 외딸이라 귀염을 독차지했을 법도 하건만 어려서부터 병치레 잦은 오라비에게 치이고 나이 차 많은 동생에게 치였다. 하지만 되레 넉넉한 심성으로 가족을 보듬어주던 누이였다. 삼형제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에 있어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할 때에도 부모님의 허전함을 달래주던 심성 고운 누이, 하지만 유난히도 인생의 모진 풍파를 많이 겪은 누이는 힘겨운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세 아들 공부시키느라 딸내미에게만 해준 것이 없다고 미안해 하셨던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못 다한 배움, 못 다 이룬 꿈을 천국에서 다 이루길 바랄 뿐이다.

말 안 통하는 아들들 대신 평생 친구처럼, 자매처럼 살갑던 딸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꿋꿋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셨지만 밥 한 술, 물 한 잔도 넘기시지 못할 만큼 가슴에 꽉 찬 응어리를 풀지 못해 병이 나실 수밖에…. 남을 위해 산다는 명분으로 수십 년 세월 동안 다정스레 잡아보지 못한 어머니 손을 만져 보니 나뭇가지에 맺힌 옹두리(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처럼 불퉁불퉁 불거진 손마디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아픔을 극복하려 안간힘을 쓴 흔적으로 남은 옹두리, 옹두리 손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손에 세월의 흔적, 고통의 흔적, 인내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글쟁이인 척하는 아들의 손은 아직도 보드랍고 살결 고운데 말이다.

큰 병이라도 나실까 싶어 애써 위로하려는 나에게 어머니는 그저 가만 놔두라고만 하신다. 이제껏 그렇게 홀로 아픔을 견뎌 오신 것처럼 또 하나의 큰 옹두리를 빚으시나 보다. 우연히 손에 든 책 한 권에 어머님의 심정을 읽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걸 못이 박힌 가슴으로 느껴야 할 때 어떠하다는 걸 네가 알 리가 없지. 또 알아서도 안 되고. 그러나 너도 손가락에 가시 같은 게 박혀본 적은 아마 있을 것이다. 가시 박힌 손가락은 건드리지 않는 게 수잖니? 이물질이 닿기만 하면 통증이 더해지니까. 어미에게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마라. 만약 손가락 끝에 가시라도 박힌 경험이 있다면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설사 아기의 보드라운 뺨이라고 해도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만져볼 수 없다는 걸 알 테지. 그런 손가락은 안 다치려고 할수록 더욱 거치적거린다는 것도…. 못 박힌 가슴도 마찬가지란다. 아, 제발 무관심해다오.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때까지"(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상처,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를 향해 내 못 자국을,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 말씀하셨다. 배신, 억울함, 고통을 떠올리는 아픈 상처를 왜 만져 보라 하셨을까? 믿음 때문이었다. 확인하지 않고 믿어주면 좋겠지만 만져서라도 믿어 달라는 것이다(요 20:29). 

자식들 뒷바라지에 옹두리 손이 되어 버린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께, 소외받고 상처받아 옹두리 같은 마음으로 웅크린 외로운 이들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정말 힘드냐고, 무얼 바라느냐고, 그 어떤 토도 달지 말자.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어도 그 아픔과 고통을 진정어린 믿음으로 대하자. 옹두리 곁에 새싹이 움트고 새 가지가 뻗어날 것을 기대하며 말없이 뿌리를 적시는 사순(四旬)의 믿음의 계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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