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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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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조병호 한시미션 대표·목사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그것이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창조적 발전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토론은 물론 전쟁도 불사한다. 그러나 전쟁을 통한 해결은 그 상처가 너무 크다. 그래서 전쟁보다는 토론이 더 좋은 방법이다. 

근래 들어 많은 토론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양측의 생각이 같으면 토론의 주제로 성립되지 않을 만큼 토론의 주제는 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충돌되는 것이다. 토론 프로그램의 한 진행자는 "토론이란 토론장에서 상대의 의견을 듣고 설득 당할 준비를 하고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대한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충돌이 가장 많은 곳은 국회이다. 국민들의 모든 생각이 집합되는 곳이며 여야 합의를 통해 국가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곳이기에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이 되려면 체육관에서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리적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올 들어 여야 충돌로 파손된 기물의 복원비로 1억여원의 국민 세금이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토론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토론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로는 토론 문화의 역사가 짧다는 것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얼마나 토론을 할 수 있었겠는가. 친일·반일 간 대립에 이어 해방 후 신탁통치 찬반 등 우리 민족 내에 대립은 많았으나 그 속에서 합의를 찾으려는 시간과 노력은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같은 토론 문화가 형성된 이유는 한국 기독교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학생단체인 협성회가 '아내와 여자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한가?' '결혼 전 남녀가 미리 얼굴을 대하고 만나는 것은 가한가?' '한복 대신 양복을 입는 것이 가한가, 가하지 않은가'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시작한 것이다. 또 당시 협성회 토론에서 사용하던 구두 표결 진행 방식, 이를테면 의장이 "가(可)하면 '예' 하시오, 부(否)하면 '아니오' 하시오"라면서 가부를 묻는 방식은 오늘날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을 핵심 주제로 삼아 토론함으로써 삶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냈던 것이다. 

성경으로 들어가 보면 토론의 가장 모범이 될 만한 책으로 욥기를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욥기를 그저 고통당한 욥이 믿음으로 인내하여 결국은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는 내용으로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욥기야말로 욥과 패널 3명이 토론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토론 주제인 인간의 고통 문제를 놓고 그렇게 심도 있게 토론한 책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욥과 패널 3명의 수준 높은 지혜를 담은 토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최고 대답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토론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욥기를 읽고 토론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토론을 염두에 두는 이들이여, 욥기를 한번 제대로 통독해 보시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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