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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야구도, 정치도, 교회도… 기본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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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도, 정치도, 교회도… 기본이 중요해
기본에 충실했던 아일랜드 선교사 파트리키우스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주후 5세기경 복음의 불모지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선교사로 활약했던 파트리키우스(주후 390-460)는 390년 로마 제국의 영지 브리튼에서 신실한 로마카톨릭 교회 신자였던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로마제국의 브리튼 식민지 관리인 칼푸르니우스(Calpurnius)로 알려져 있다.

파트리키우스는 어렸을 때 기독교 신앙을 진지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 16세가 되던 해 아일랜드 약탈자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끌려간 뒤 6년간 가축을 치며 암울한 생활을 하는동안 비로소 열정적인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 노예로 어렵게 생활하던 어느 날, 꿈 속에서 도망칠 배가 준비됐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와 배를 타고 약 320km를 여행해 고향인 브리튼으로 복귀했다.

그는 귀향길에 선상에서 ‘오셔서 다시 한번 저희들과 함께 지내 주세요’라고 아일랜드 어린이들이 애원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때 자신은 아직 기독교 교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큼 기본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프랑스로 즉시 되돌아가 레린스 수도원에서 기초부터 신학을 연구한다. 그후 15년 동안 오세르(Auxerre)에서 사역하다 417년 사제로 정식 서품되고, 432년에는 게르마누스(Germanus)의 추천으로 아일랜드의 주교가 된다.

거기에는 기독교에 대해 맹목적으로 적개심을 품은 원주민과 추장들이 많았다. 파트리키우스는 수도원에서 배운 기본적인 순수 신학을 그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쳐 아일랜드 섬 전체를 기독교로 복음화하는 데 성공한다. 442년과 444년에는 로마(Rome)를 방문, 아르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지역 복음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30년 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오직 순수한 기본 신학을 선포했기에 그곳을 중요한 기독교 성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파트리키우스는 아일랜드인 및 픽트족과 앵글로 색슨족을 만나 오직 성경대로 기본적인 예수의 복음만을 전해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고, 약 300개의 교회를 설립했으며, 12만여명에게 물세례를 베풀었다. 파트리키우스는 예수를 전파하던 중 기독교에 적대적인 촌장들과 옛 이교의 수호자인 드루이드교 사제들의 저항에 가끔씩 부딪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기본에 충실한 그의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늘 다투기 좋아하는 아일랜드인을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순교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순수한 신학의 기본에 충실한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가 아일랜드에서 선교사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세워진 기존 교회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일랜드 교회가 로마의 관료적 성직 계급제도와는 무관하게 발전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당시 아일랜드 수도원장들은 관료적 교회체제를 구축하려는 욕망이 전혀 없었고, 오직 교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기본인 복음적 설교, 성경연구,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등에만 관심을 가졌다.

파트리키우스는 30년간 사욕없이 아일랜드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다가 460년 7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런데 주후 7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세상 속에서 매우 유명한 전설적 인물이 됐으며, 회자되는 전설들은 계속 늘어갔다.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 없애버렸다는 전설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그가 어떤 불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성삼위일체, 즉 한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위격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파트리키우스의 날인 3월 17일이 되면 국화(國花)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다닐 정도다.

기독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고, 심지어 교회에 대항해 난폭하기까지 했던 아일랜드 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파트리키우스가 단지 교회로서, 목회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에 매우 충실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해도, 그는 자신이 먼저 기초를 공부한 다음에야 사역에 임하는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다. 또 신학을 공부한 이후 아일랜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때도 기존 교회에 의지해 사람중심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신학에 따라 기도하면서 일을 했다. 오직 기본에 충실한 그의 순수한 방법 때문에 관료적 교회에서 벗어나 신실한 교회구조를 이 땅에 선 보일 수 있었다.

성장을 위해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한국교회는 수세기 전 파트리키우스가 견지한 신학과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기본으로 돌아가야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교회를 이 땅에 세울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한 교회를 만들어야 사회적·교회적으로 칭찬받고 영향력있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것도 교회로서 기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탤런트 장자연 씨의 자살 사건도 따지고 보면 관련자들이 공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박연차 회장의 뇌물 리스트 사건도 정치인으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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