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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값이 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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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이 얼마예요?  

- 조병호 한시미션 대표·목사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값이 얼마예요"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값'을 말한다. 출산비부터 장례비에 이르기까지, 머리 손질 비용에서 신발 가격까지 우리는 평생 '값'에 대해 묻고 산다. 슈퍼마켓에서 수많은 물건들의 값을 묻는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값'의 결정 문제를 놓고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그렇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 수입 가격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한국 역시 우리 농산물 가격에 비해 매우 낮은 미국의 농산물 가격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국민들의 이익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대변하는 국회의 고민도 바로 이런 것이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매일 환율, 주가, 세일 가격에 얽매여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시장 속에서 매일 재평가되는 환율과 주가의 등락 폭 및 물건의 세일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평생 눈에 보이는 것들의 값이 얼마인지를 묻고 사는 우리가 정작 우리 자신의 값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묻지 않으면서 솔로몬의 옷값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물건 값에 자신의 가치가 비례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값을 정직하게 묻지 않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나의 가치'를 말씀해주시고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땅값'을 보러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교통비, 통신비, 등록금, 생필품 가격 등을 조정하고자 오신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 인생의 가치를 다시 조정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그 결과 인생의 값을 재평가해주시기 위해 그 먼 길을 오신 것이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뚫고 거라사 지방을 찾아 가신다. 그 밤에 피곤을 무릅쓰고 그곳에 가셔서 거라사 광인의 값을 제 위치로 돌려놓으신다. 사회적 가치로는 어떠한 값도 매겨지지 않는 그를 돼지 2000마리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의 값이 공중 나는 새보다도, 안식일의 양 한 마리보다도 더 귀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하의 값을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해 물의 값이 얼마인지, 백두산의 값이 얼마인지 누구도 그 값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온 천하를 창조하시고 그 천하의 진정한 값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하다고 우리 인생들의 값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값이 당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수많은 수난을 당하신 후, 결국 십자가에 오르신다. 우리의 값을 당신의 목숨으로 바꾸시기 위해서다. 우리 인생들의 값은 바로 이 십자가에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정해진다. 나의 가치, 내 이웃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시장이나 백화점이 아니라 4복음서에 들어가 보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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