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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 편지] 봄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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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봄의 초대장    
 
- 이철환 동화작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오신다는 생각에 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만 제가 글을 쓰는 건지, 글이 저를 쓰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께 드릴 산나물을 캐기 위해 오늘은 온종일 봄볕 속을 다녀왔습니다. 취나물 돈나물 씀바귀나물의 살진 맛을 당신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지난날의 당신을 생각하면 행복한 웃음이 나옵니다. 웃는 것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만나고 알았습니다. 침묵으로 더 많은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신을 만나고 알았습니다. 

당신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찾아오시는 길을 편지에 담아 보냅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며 저를 찾아오세요. 수락산역에서 1131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세요. 감나무 빵집이 있는 골목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올라오시면, 곧게 뻗어 있는 산벚나무 오솔길이 나올 거예요. 산벚나무를 하나, 둘, 셋, 넷, 천천히 소리 내어 세면서 걸어오세요. 벚꽃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리더라도 눈을 꼭 감지는 마시고요. 지나오신 산벚나무가 몇 그루인지 까맣게 잊어버리실지도 모르니까요.

서른두 번째 산벚나무까지 걸어오시면 바로 맞은편에 기린 키 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거예요. 소나무가 있는 길로 걸어 들어오세요. 가지마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산수유나무가 환하게 보이시면, 산수유나무 오솔길을 따라 다시 백 걸음쯤 걸어 들어오세요. 그곳에 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느티나무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그루터기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시면 딱따구리가 콕콕콕콕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봄바람이 다가와 당신 이마의 땀을 다 씻어주면, 까치집이 보이는 가장 키가 큰 나무를 찾으세요. 까치집 아래까지 걸어 오셨으면 아이처럼,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세요. 노래를 부르며 집들이 보이는 쪽으로 계속 걸어오세요. 노래가 끝나는 곳에서 뻐꾸기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달팽이처럼 맨발로 당신을 맞으러 가겠습니다.

당신이 오시면, 봄볕에 잘 데워진 툇마루 위에 앉아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 화전 위로 낭만 깊은 살구꽃잎 하늘하늘 떨어져내리면, 당신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힌다 해도 저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오실 날을 생각하며 저는 오늘도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별빛도 당신 얼굴이고, 달빛도 당신 얼굴이고, 앞마당에 피어 있는 살구꽃 앵두꽃도 모두 당신 얼굴입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살구꽃 앵두꽃 다 지기 전에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 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10∼12)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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