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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으로부터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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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으로부터의 치유 

- 강선영 목사(에제르치유나눔선교회 대표, 한국상담심리연구소 소장) 


얼마 전, 강화도에 인접한 전원주택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모두의 건강 때문이었지요. 도심의 한가운데서 공해에 찌들어 속속들이 아프고 고장난 몸을 깨끗한 공기 속으로 옮겨 1년 만이라도 정화시켜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수년간 고층 아파트의 중간쯤에, 공중에 붕 떠서 살았던 삶을 접고, 땅에 발붙이고, 흙도 밟아보고 싶어 시골로 간 것입니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바다 내음을 품은 바람이 불어오고,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봉오리를 막 맺고 있습니다. 여러 날 지나는 동안 몸이 먼저 알아보고 놀랍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상담자로서, 목회자로서, 교육자로서 늘 마음이 분주하고, 늘 많은 일 속에 묻혀있거나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저로서는, 부엌에서 산이 보이고, 산새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고, 거실에서 숲과 나무와 하늘이 보이는 이곳이 천국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이곳으로 오면서 텔레비전도 없애고, 귀에 익숙한 소리들도 줄이고, 자연의 소리에만 귀 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고즈넉한 삶의 시간을 가지며, 이곳에서의 축복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집니다. 비록 교회, 상담실, 학교 등과 멀어져 다니긴 힘들어도, 잠자는 시간동안 내 코로, 내 온 몸으로, 내 온 영혼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나를 회복시키고 있는 은총의 귀한 시간 때문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집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꽃봉오리들이 개화를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깔린 잔디에도 갈색으로 죽어있던 것 같던 마른 풀 사이로 연초록의 작은 잔디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왔습니다. 봄, 하면 마음부터 설렙니다. 기쁨이 민들레씨처럼 툭, 터져 오릅니다. 몇 번 버림받았던 덩치 큰 유기견,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도 데려다 놓았습니다. ‘앉아’를 하면 앉아서 머리를 내밉니다. 쓰다듬어달라고...데려올 때 두려움 때문에 눈에 흰자위가 온통 충혈되어 빨갛던 녀석이 며칠새 다 회복되었습니다. 밝고 활발하고 착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도 이렇게 밝고 사람을 잘 따르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온 가족이 다 나가고 나면 누군가 올 때까지 너무 외롭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친구를 하나 만들어 줄 생각입니다.

주말이면 분주하던 삶을 내려놓고, 상담 현장에서의 치열하던 내면의 전쟁도 휴전하고, 오직 깨끗한 하늘과 공기와 산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신속하게 회복되는 느낌입니다. 아, 그렇군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지으시고, 그 자연 속에서 날마다 인간이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자동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팍팍한 도시의 삶, 분주하고 까칠해진 인간 군상들 속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어리석음조차 다 용납해주는 대자연의 품은 어김없이 새봄을 맞아 부활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 집 개의 친구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몸집이 작지만 이미 어른이 된 코카스파니엘도 여러번 주인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작은 녀석은 큰 녀석과는 달리, 평소에도 필요이상으로 경계심이 발달되어 있고, 밤이 되면 더 예민해지고,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거립니다. 이 작은 동물을 보면서, 그 상처받은 강아지의 본능을 보면서, 저절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동물적 감각으로 경계하며, 때로는 수치심에 몸서리치며, 때로는 으르릉거리며 자신도 다치고 남도 다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게 됩니다. 그것은 ‘나’이고 ‘너’이고 ‘우리’가 아닌가요. 작고 보잘 것 없는 버림받은 강아지 한 마리조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 생존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느라 터무니없이 으르릉거리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상처입은 사람’은 상처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위장하며 그럴듯한 모습으로 보이느라 기운을 소진시키며, 그러면서도 또다시 상처위에 다른 상처를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속으로 무수히 울면서, 몸 밖으로 울음 한번 속 시원히 토해내지 못하는 내담자들, 불쌍한 나의 형제 자매들 때문에 저는 또 울게 됩니다. 상담실에서 그들과 치유의 여정에 동행하며 저는 날마다 다른 고통의 경험을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느끼며 많이도 울고 있습니다. 그 울음과 눈물 속에서 눈을 빛내며 상담자를 신뢰하는 내담자들을 느낍니다. 그들과 함께 고통의 이편과 저편을 넘나듭니다. 그리하여 그 고통스러운 과거를 자신의 인생의 강물 뒤로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맑고 희망 가득한 새로운 강물 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됩니다.

이 평화로운 마당 한 가운데서, 저렇게 맑고 예쁘게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는 계속 웅크리고 있습니다. 저렇게 밝은 햇살 아래서 웃지도 못하고... 친구가 되기 위해 왔지만 친구가 되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이 강아지도 어느 날, 치유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으며, 숲으로부터의 부드러운 바람의 노래와 바다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새로운 계절의 소식을 몸으로 들으며 조금씩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치유의 여정에 동참해야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채, 속으로 아픔을 삼키며 혹은 억누르며 살아가는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다치고, 배우자가 다치고, 자녀가 다칩니다. 그리고 교우들 혹은 직장의 동료가 다칩니다. 그것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가끔 그 끔찍한 고통의 기억을 억누른 채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한 번도 마음 놓고 울어보지 못한 내담자를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못 울어본 불쌍한 그들은, 자신의 울음이 불경건한 모습이 될까봐, 혹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서 울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혼 가득히 고름이 차오릅니다. 이제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치유를 받아들이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아십니다.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요. 아프면 아픈 대로, 상처가 있으면 있는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그냥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시는 놀라운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날 크리스챤들은 쉼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쉼이 아닙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그 쉼 속에서, 진정한 쉼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푸른 초장에 누워서 부드러운 바람결을 느끼며 꽃잎이 온 몸에 덮히는 감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그 바람결을 타고 내려와 온전한 쉼의 자리로 안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상담문의: http://www.kclatc.com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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