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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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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판 짜기  
 
- 조병호 목사(한시미션 대표)
 

'판'이란 일이 벌어진 자리, 또는 그 장면을 한마디로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씨름판' '정치판'이라는 말로 쓴다. 지금 런던에서는 20개국 정상들이 모였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새판을 짜는 중이다. 실물경제보다는 금융경제로 이익을 만들다 어려움을 겪는 미국이 앞장서고 있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취임 후 맨 처음 유럽을 방문하지 않고 동북아를 방문했다.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 중심의 새판을 짜려는 생각이다. 이렇듯 세계는 지금 바쁘게 국제정치와 경제의 새판을 짜고 있다. 

일찍이 로마제국의 판에는 신분제도 즉 노예제도가 있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의 존속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노예 몇 명은 반드시 두고 살았고, 전쟁을 통해 로마시민이 소유할 수 있는 노예의 수는 늘어 갔다. 당시 로마가 온 제국을 다스리고 있을 때엔 제국 내 노예 수가 6000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로마의 노예제도는 기원전 70년쯤 검투사 출신의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통해 저항을 받은 일이 있었다. 로마제국은 이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을 죽이고 6000명을 사로잡았다. 그 6000명을 로마의 1번 국도인 아피아가도에 양쪽 3000개씩 십자가 처형을 했다. 로마제국의 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로마제국에서 노예제도라는 철옹성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경계였다. 도망간 종을 용서하기 시작하면 종들이 로마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도망친 종을 처벌하는 일에 모든 사회적 힘을 동원했다.

바울이 빌레몬서를 쓸 때는 바로 이러한 로마제국의 시대였다. 즉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역시 신분제도의 틀 안에 있었다. 로마 신분제도에서 보면 바울은 가장 유리하고 월등한 로마시민의 위치에 있었다. 빌레몬 또한 사회적 신분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정반대였다. 게다가 빌레몬과 도망간 종 오네시모의 관계는 가장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바울은 예수를 믿는 빌레몬에게 예수를 믿는 오네시모와 형제가 되자는 새판을 짰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요, 또 자신의 제자 빌레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이 세상의 노예제도를 뛰어넘어 오네시모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판을 짜자는 것이다. 사회가 만든 주인과 종의 관계를 바울은 더 근원적으로 십자가를 통해 형제의 관계로 판을 바꾼 것이다. 바울 자신과 빌레몬, 오네시모가 형제가 되자는 이 혁명적인 생각은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십자가 판을 알아본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짜는 판은 판을 짜는 사람들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로마제국이 짰던 판이나 21세기 세계가 짜고 있는 판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위에 세우시기 위해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다. 창조 이래 해 아래 유일한 새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예수 십자가를 통하면 나뉘지 않고 차별을 두지 않고, 편견을 갖지 않고 진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묶여진다.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면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새판을 짜게 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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