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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解(쪼개고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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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쪼개고 베다) 

- 허태수 칼럼


어릴 적에 어머니는 내게 부엌에서 쓰는 식칼 가는 일을 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면 우물가에 뒹굴던 숫돌을 세우고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옆에다 갖다 놓은 다음에 슥슥삭삭 폼 잡으며 숫돌에 칼을 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무쇠 칼의 겉이 번들거리면 잘 된 줄 알고 날은 안 세우고 칼의 표면만 갈았습니다. 그러나 칼 갈기에 익숙해지고 보니 칼의 표면이 반들거리는 것과 칼의 날을 세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어떤 요리사가 대단히 큰 칼을 가지고 소를 한 마리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자주 칼이 무디어 지는지 신경질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번 갈아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칼을 가는데 열중했습니다. 평소보다 열배나 더 갈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칼질을 해보니 한번만 쓰면 무뎌졌습니다. 이번엔 백배나 더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그는 이미 소고기 요리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칼 가는 일에만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풀다’의 뜻을 지닌 ‘해(解)’는 한 자루의 칼로 소의 머리를 헤쳐 쪼개는 형상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유능한 사람, 곧 지도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칼 대신 기도로 나 자신을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그럽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이며 뼈며 심장을 도려내고 있습니다. 살도 피도 신경도 모두 발라냅니다. 그런데요, 이상하게도 나를 해체하는 이 칼이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됩니다. ‘解=풀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산산이 쪼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거기에 쓰는 칼, 즉 기도는 결코 무뎌지지 않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쪼개려고 하니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칼이나 기도를 들이대기 때문에 무뎌져서 평생 칼만 갈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단번에 해체하는 그 칼, 아무리 써도 무뎌지지 않아서 여러 번 숫돌에 갈 필요가 없는, 칼 갈다가 그 칼을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인생이 끝나는 그런 칼이 아닌, 기도가 지금 내 손에 있습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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