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가분수형 교회를 탈피하라

첨부 1


가분수형 교회를 탈피하라
지성과 영성으로 사역한 스코틀랜드 선교사 콜룸바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스코틀랜드의 탁월한 선교사 콜룸바(521-597)는 이오나 수도원의 제9대 수도원장이요, 그의 제자였던 아담난(Adamnan)의 책 ‘콜룸바의 생애(Vita Columba)’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담난의 저술에 따르면 ‘교회의 비둘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콜룸바는 521년 아일랜드 북단 스코트족 땅인 도네갈(Donegal)에서 귀족 가문의 부유한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이 된 이후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크리스천 학교에 입학했고,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가가 인정하는 성직자가 된 이후 여러 지역에서 설교와 교육, 그리고 수도원 개척건립 등 다양한 사역을 열정적으로 감당했다.

콜룸바는 학자로서 탁월한 지식과 더불어 성도들을 온 몸으로 사랑하는 역동적인 목회자로서의 영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당시 교회 공동체와 세상은 지성과 영성이라는 탁월한 양 날개를 균형 있고, 조화롭게 갖춘 콜룸바를 크게 주목한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학문 연구에 열심을 다했다. 좋은 학자들이 저술한 여러 권의 책들을 필사해 여러 교회 공동체에 적극 배포했고, 자신이 직접 연구해 쓴 다양한 장르의 저작물도 여러 권 남긴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학문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중세 암흑시대 수도사들이 지적으로 성숙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의 강력한 충고에 동의하는 수도사들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책들을 스스로 필사해 교회와 세상에 배포하는 사역을 하기도 한다. 당시 중세사회는 문맹률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었는데, 콜룸바가 이끌던 수도원 공동체는 지적 탐구가 매우 활발해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학문의 보고가 되고 있었다. 지적 능력 제고를 향한 그의 선교 정책과 역동적 실천으로 인해 능력 있는 설교자, 선교사, 학자들이 수하에 많이 배출됐다.

또 콜룸바는 아일랜드 지역에 여러 수도원을 개척, 건립해 교회 확장과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특히 데리(Derry)와 더로우(Durrow) 같은 지역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운 일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콜룸바는 563년 어느 날 그를 따르는 12명의 선교 동반자들을 데리고 아일랜드인이 애용하던 짐승 가죽을 입힌 배를 타고 선교를 위한 항해를 떠난다.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아이오나 섬에 도착해 13개의 초라한 주거지와 나무로 만든 교회당 건물을 세운다. 그 교회당을 선교 본부로 삼아 픽트족이라 불렸던 주변 스코틀랜드 부족을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며, 스코틀랜드와 북잉글랜드 지역에 예수 복음을 전해서 그 도시 전체를 기독교화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둔다.

콜룸바는 한때 아이오나 섬에 있는 큰 수도원의 원장이 돼 교회 공동체에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런데 탁월한 학자요, 신실한 목회자로 소문난 그는 이상하게도 참지 못하고 자주 분노하는 급한 기질 때문에 스스로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번은 그의 급한 기질 때문에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3천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콜룸바 선교사의 성격에 위와 같은 큰 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생 동안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 실천가로 헌신한 경건의 사람이었다. 일생동안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데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살아있는 학자 겸 목회자였다. 그가 갖춘 지성과 영성이라는 양 날개를 통해 스코틀랜드 지역에 기독교가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그를 스코틀랜드의 사도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이러한 콜룸바는 597년 76세의 나이로 아이오나 섬의 수도원에서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여, 거룩한 천사들이 그를 맞으러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떠났다.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는 탁월한 지적 능력과 더불어 역동적인 실천력이 한 축이 되어 움직여야 성장, 발전할 수 있다. 머리는 없고 다리만 있는 교회, 또는 머리는 있는데 다리가 없는 교회는 정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전자는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쉽게 지칠 것이고, 후자는 머리로 세운 기획안은 탁월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는 앉은뱅이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초창기 교회는 대체적으로 머리는 없고 강한 다리만 있어서 교회당을 건축하고, 봉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한 교회 공동체는 세월이 흐르면서 몸이 지쳐 넘어지는 현상을 나타내게 됐다. 반면 21세기 오늘날 한국교회는 머리는 크게 발달했는데 다리가 매우 짧아져 균형잡힌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발을 통한 실천은 없고 오직 머리로만 사역하는 가분수형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콜룸바가 꿈꾸며 이룬 하나님 교회의 모델인 머리와 다리의 양자가 균형을 이룬 공동체를 한국교회가 이뤄나가야 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