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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분의 관객’과 신앙의 기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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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의 관객’과 신앙의 기사도  

- 리처드 포스터 (국제 레노바레 대표)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신앙적 지조를 지킬 수 있는가. 필자는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소그룹 비즈니스 리더들과 회동한 적이 있다. 

경쟁과 모험이 가득한 비즈니스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 창조적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그 모임을 준비하면서 해당 문제에 관한 식견을 얻기 위해 옛날과 지금의 여러 저술들을 훑어보았다. 그 중 청교도 성직자 존 카튼과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시각이 마음을 끌었다. 이를 그 모임에서 소개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카튼의 글에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삶의 분야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는 강력한 청교도적 시각이 나타난다. 이 시각에서 우리는 직업과 일에 대한 보다 완벽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각종 직업은 단순한 재능이나 경제적 이득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룹의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분의 관객'에 관한 카튼의 사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문구의 개념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히 직업 세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앞에서, 하나님 한 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한 분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수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하지만 세상 비즈니스에 근면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여기에서 나왔다. 

물론 이 주제는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사도 바울의 유명한 구절 속에 그 주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엡 6:6∼7). 이 개념은 그들의 마음을 아주 강력히 사로잡았다. 첫째 그건 명백히 옳기 때문이고,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그대로 행하지 못할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며, 셋째 이 개념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주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 경쟁 순익 등에 온통 관심이 집중돼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시류에 영합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좌중의 상상을 사로잡았던 또 하나의 개념은 키르케고르가 말한 '신앙의 기사(騎士)'였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삶의 의미를 얻으며 창조주의 에너지에 중심을 두고 살아간다.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신실하게 살다가 걱정 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는 아무리 작은 직무라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실히 수행하며, 아무리 험난한 사명이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감행한다. 그는 전적으로 세상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지만, 또한 전적으로 세상을 초월해 살아가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신뢰한다. 그는 타인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강요하거나 조종하지 않고 남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한 분의 관객' '신앙의 기사' 둘 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제한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런 불가능한 이상들이 바른 삶임을 가르쳐야 하고, 성도들이 현실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어야 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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