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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회의적 신앙이 부활 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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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 신앙이 부활 신앙으로   
 
- 김원배 목사(목포예원교회)
 

새 주간이 시작되는 안식 후 첫날 저녁시간, 제자의 무리들이 예배를 위해 함께 모였다. 꼭 잠긴 문 뒤의 조촐한 예배공동체. 아직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무리들 가운데 돌연히 예수께서 나타나 그들의 한가운데 서신다. 꼭 잠긴 문의 폐쇄성이 무너져내리고 힘찬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길이 열리며 희망이 용솟음쳐오른다. 첫 번째 부활주일을 맞는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도마는 "주님은 살아계신다. 우리가 그를 보았다"는 제자들의 환호성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는 상처받은 몸, 고통받은 못자국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십자가 처형을 지켜보았던 다른 두 제자들도 그들의 희망이 무너져내리는 절망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왔던 갈릴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부활의 첫 번째 증인들 가운데도 대립된 두 목소리가 있었다. 의심하고 회의하는 두 종류 제자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 가운데도 현존한다. 이들은 회의하며 믿는다. 동시에 이들은 믿으며 회의한다. 이렇게 두 현실이 서로 깊이 연결돼 있는데 도마 속에서 어떻게 믿는 자와 불신자를 구별해낼 수 있겠는가.

도마로 대표되는 초대교회의 '회의하는 믿음'이 부활 신앙의 새로운 모태가 되었음에 주목해 보자. 부활하신 주님께서 의심과 회의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공동체 가운데 오셨던 것처럼 아직도 회의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들 삶의 현장에도 오신다. 주님의 부활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자국, 상처, 못자국을 지니고 있는 주님의 몸 가운데서 드러난다. 우리들의 지상이 상처의 땅으로 남아 있는 한 주님의 부활은 값싼 은혜로의 도피, 세상 밖으로의 탈주 가운데서 경험될 수 없다. 부활의 현실은 우리를 다시 십자가의 현장에로 이끈다. 

주님은 도마와 같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 손의 못자국을 보라. 내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라. 모든 인간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표시가 새겨져 있지 않느냐?" 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 도마는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고백했다. 부활 신앙은 이처럼 회의와 의문에서 성장해 경이로운 새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를 직접 만났던 첫 번째 증인들은 사라져갔고 다른 세대가 오고 또 온다. 증인들은 사라져가고 우리에게는 말씀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말씀은 사건을 일으킨다. 말씀이 일으킨 사건으로 형성된 교회가 우리들 가운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 사건을 상기시킨다. 교회가 매주 모여 드리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현재화하는 구원의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활의 현재화는 우리를 다시 십자가의 현장에로 이끈다. 그리고 우리를 파송한다. "너희들은 가라. 지금 세상으로! 가난과 절망,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으로! 이 땅의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에게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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