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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혼의 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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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근력  

- 이지현 기자 (국민일보)
 

고래나 물개 등의 해양동물들이 갑작스레 해안으로 올라와 죽는 스트랜딩(좌초, stranding) 현상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먹이를 쫓거나 적한테 쫓기다 해류에 밀려온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오염이나 먹이 고갈 등 생태계의 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 선박이나 잠수함에서 나오는 소음과 초음파가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한다는 추정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특수한 저주파로 서로에게 연락하는 고래가 바다를 뒤덮은 온갖 배들의 엔진소리 때문에 친구, 가족들과 교신이 단절됐다는 것이다. 고독이 바다만큼 커지면 고래는 살 의욕을 잃고 둥둥 떠 있다가 해안으로 밀려 온다는 것이다. 

고래의 스트랜딩을 보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초상을 떠올리게 된다. 성인 10명 중 한 명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하고 이중 15%가량이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심리적 동기는 고통과 절망으로부터의 도피, 죄의식에서 비롯된 자신에 대한 처벌이나 주위의 중요한 사람에 대한 응징 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은 충동의 순간을 넘기면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여대생 승객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한강대교 위에 세워 달라고 했는데 한강다리 위가 아닌 둔치에 내려주었다고 했다. 또 택시비도 받지 않고 "아가씨, 힘든 일이 있나본데 여기서 바람 좀 쐬고 가세요. 힘내세요"라고 말해주었다. 여대생은 다행히 자살충동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은 치매나 암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지만 오해와 편견이 심하다. '오죽 나약했으면 우울증에 걸렸겠어' '우울증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병'이란 것 등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증이란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사람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섬세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이 어려움을 견뎌내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힘든 환경을 극복하면서 영혼에도 근력이 생긴다.

현대인의 만남을 무색, 무취, 무미의 '자일리톨 만남'에 비유한다. 그만큼 감정의 교류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정보만 교환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면 거대한 바다의 고래처럼 외로움에 해안으로 기어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어깨가 축처져 있다면, 무심코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가 하지 않은 말까지 느낄 수 있어야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표현되지 않는 말까지 듣는 귀를 가지라고 하신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꽃비로 내리고, 벌써 푸른 잎들이 무성해졌다. 이제 라일락, 아카시아 꽃들이 순서대로 피어날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곧 사라질 꽃들이지만 땅 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살아 숨 쉰다면 지금 힘들어도 끝내 살아 남을 수 있다. 뿌리가 있는 것들은 존재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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