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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산화탄소 그리고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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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그리고 교회 

- 허태수 목사(춘천 성암교회)


인도의 가장 복잡한 도시인 꼴까타에서 고아와 거지를 돌보고 연고자 없는 시체를 잘 다루며 일생 동안 옷 두 벌로 살아가는 사랑의 실천자 테레사 수녀가 있었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꼴까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어떤 소년이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사흘 동안 설탕을 먹지 않겠어요. 그 대신 먹지 않은 사흘분의 설탕을 제게 주세요.” 사흘 후 그 소년은 자기가 아낀 설탕을 들고 사랑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들었지만 어린 소년 한 사람만이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난 후 기자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사랑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수녀님이 대답했답니다. “사랑이란 꼴까타의 어린 소년이 자기가 먹을 설탕을 먹지 않고 아껴서 사랑의 집으로 들고 오는 사흘분의 마음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갈 때 얼마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까?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승객 1인당 142㎏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제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품의 포장지에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환경부 발표에 의하면 두부 한 모는 대략 275g이고, 코카콜라는 168g, 햇반은 329g이며, 정수기는 643g, 가정용 보일러는 자그마치 31t이나 된다는군요. 

인도에서 있었다는 소년의 ‘사흘 분 마음’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소년의 ‘사흘 분 마음’은 결국 이 시대 한 인간이 생존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과 반비례합니다. 한 개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대 수치가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배려’와 ‘사랑’이라는 기독교인의 존재론적 철학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내가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 내가 타는 차의 크기와 시간, 내가 소유하는 공간과 물질의 부피가 마냥 ‘자랑’이 아닙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요 낭패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교회나 교인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생물학적 존재뿐만 아니라 신앙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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