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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심이체(二心異體)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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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이체(二心異體)의 사랑  

- 김석년 목사 (서초성결교회)
 

"인생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당신은 활이 되어 화살인 당신의 사랑의 대상을 미래로 날려보내야 한다. 사수는 영원의 길 위에 있는 표적을 겨냥하고 하나님은 그 화살이 날렵하게 멀리 날아가도록 그분의 능력으로 당신의 팔을 구부린다. 사수의 손에 들어간 힘을 당신은 기뻐하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 자리에 있는 활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스콧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 실린 문구이다. 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은 소유하는 것, 친밀감을 넘어 몸과 정신이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이다. 곧 서로가 분리된 개체임을 깨닫고 존중함으로써 더욱 사랑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안식년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한 것 중에 하나가 소위 메인(main) 예배로 불리는 주일 장년예배를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것이었다.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정돈된 분위기 속에서 드리던 예배에 유치부 어린이부터 초·중·고교생까지 참석하게 되었으니 낯섬과 어수선함을 어찌 예상치 못했겠는가. 당연지사 이런저런 반대 의견이 들려왔다. 은혜를 받지 못하겠다는 어른들의 불평보다도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자녀 세대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충분히 공감했다. 

그러나 변화의 초점은 어른 문화에 자녀들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는 어른들의 변화라고 믿었다. 물론 목사인 나부터 달라져야 했다. 목소리 톤과 표정, 인사법, 말투…. 모두가 어려웠고 많이 익숙해진 지금도 어려움은 있다. 이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유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과 우리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나는 그 에너지를 '불가항력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는 인간의 편에서 보면 사랑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용서이다. 용서는 사랑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인간이 하나님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시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십자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사랑, 인간을 향한 불가항력의 사랑을 선언한 하나님의 '용기'이다. 용기가 사랑으로 표현되면 용서가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는 가정의달 5월, 자녀 사랑이라는 우리의 활이 팽팽히 당겨지기만 한 채 화살을 긴장감 속에 붙잡고 있다면 과녁을 향해 날아가야 할 화살은 스스로 줄을 끊고 튕겨져 나갈지도 모른다. 아무리 닮았어도 자녀는 내가 아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우리와 다른 것을 용서해야 한다. 그것은 나와 같아야만 한다고 여기고 그들을 붙잡고 있던 나 자신에 대한 용서이다. 그리고는 비록 내가 정한 목표와 다를지라도 그들이 선택하고 날아간 과녁까지 힘껏 달려가 환호하며 승리를 함께 축하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육신의 은혜를 체험한 그리스도인의 자녀 사랑일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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