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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토요 편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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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편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 이철환 (동화작가)
 

내가 아홉 살 때, 우리 엄마는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엄마는 내가 사는 산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2층 집에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왔다. 엄마가 식모살이를 간 부잣집에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다. 매일 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형과 함께 먼 길을 걸어 엄마가 일하는 2층 집으로 갔다. 엄마를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가면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형과 나는 그 집 앞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그 집 앞을 서성이는데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는 2층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고 급히 내려왔다. 어린 나는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말없이 내 등을 쓸어 주었다. 엄마는 우리 형제를 대문 앞에 잠시 세워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라면 봉지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라면 봉지 속에는 엄마가 주인 할머니 몰래 가져나온 갈비 세 대가 들어 있었다. "집에 가서 누나하고 하나씩 나눠 먹어. 엄마하고 약속해.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다고…." 형과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뺨 위로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엄마는 손으로 닦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허기진 형과 나는 라면 봉지에 들어 있는 갈비를 한 대씩 꺼내 먹었다. 손에 묻어 있는 양념까지 빨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갈비 냄새가 배어 있는 손끝을 몇 번이고 코끝에 갖다 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가 사는 집으로 갔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 형과 나는 엄마가 살고 있는 집 대문 앞에 쌍둥이 눈사람도 만들어 놓았다. "형, 우리는 쌍둥이니까, 쌍둥이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가면 엄마가 좋아할 거야. 그치?"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곤줄박이 우는 소리가 자욱이 자지러지는 저녁, 우리는 눈길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산동네 집으로 돌아왔다. 두 해가 지나도록 그 먼 길을 오가며 우리 형제는 배추잎처럼 나박나박 자랐다. 그때는 몰랐다. 어린 자식들 잠든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엄마가 산동네 집을 수도 없이 다녀갔다는 것을…. 그때를 생각하면… 아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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