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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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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 김원배 목사(목포예원교회)
 

이스라엘 방문객들이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한 600만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야드바셈이다. 오래전에 방문했지만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유대백성들이 역사 속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을 상기시켜준다. 기념관 출입구에는 살점이 완전히 도려내진, 뼈만 남은 물고기가 방문객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리고 그 곁엔 다음과 같은 표어가 적혀 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아라." 

기념관 내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쳐 왔던 참혹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가슴에 남아 있는 기억은 비명에 죽어간 어린이들을 기념하는, 캄캄한 밤중에 별들이 빛나고 있는 방이다. 낭랑한 목소리가 살해당한 어린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지옥의 계곡들을 지나 밖으로 나오는 출구에 새겨진 경구가 방문객들을 다시 붙든다. 유대교를 대표하는 랍비 바알 셈토브의 말이다. "망각하려고 하는 것은 포로생활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구원의 비밀은 기억이다." 셈토브는 성경을 꿰뚫고 흐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놓인 계약의 비밀을 이 두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망각했을 때,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참회와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오늘 우리 민족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있는 상대적인 민주주의는 우리 역사가 거쳐 온 5월의 긴 터널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호남의 5월은 아름다운 초록빛 푸르름 속에 역사의 아픔을 배태하고 있다. 5월이 오면 망월동 국립묘지에는 사랑하는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에 사무친다. 

그 5월, 권력의 야망에 사로잡힌 신군부세력이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무고한 시민들과 젊은 학생들을 무차별하게 살해했다. 무고한 기층 민중들도 죽임을 당했다. 정의와 자유를 향한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이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일부의 진실이 밝혀졌고 광주민주항쟁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고 망월동은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5·18민주항쟁의 정신이 한국 민주화의 견인차의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근대 시민민주사회를 창출하는 선도적 역할을 감당했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끌어냈듯이 5월에 분출된 자유와 인권과 평화의 가치들도 세계화 시대의 보편적 가치로 계속해서 가꾸어가야 할 것이다. 

살아남아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이 역사적 사건 속에 담긴 의미를 바로 깨닫고 소중한 역사적 가치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교회는 마치 구레네 시몬처럼 역사의 고난을 짊어지고 민족의 민주제단에 고귀한 생명을 바친 사람들의 값진 희생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품어내는 신학적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길 위에 있는 우리에게 랍비 셈토브의 말은 경각심과 동시에 영감을 준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생각해 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건의 의미와 뜻을 우리 역사의 일부로 삼아 오늘을 개혁하고 미래를 창조해가는 힘이다. 이 푸른 5월을 기억하라.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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