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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룩한 잠수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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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잠수 타기  

- 김석년 목사 (서초성결교회)
 

언젠가 한 30대 젊은 남자가 회사에서 느끼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잠수를 타기(일상을 탈피해 잠적하기)로 결심하고 납치 자작극을 벌였다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웃지 못할 황당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직장인들이 그 심정만큼은 충분히 동감한다는 반응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소리, 환경, 관계, 그 무엇도 잠시 단절하고 나의 한계와 무능력을 인정하며 재충전을 위해 깊이 호흡하는 시간, 잠수 타는 시간이 없기에 우리네 인생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탈진하지 않나 싶다.

공교롭게도 기독교 신앙은 세례라는 '잠수의 은혜'로 시작된다. 장성한 예수께서 구원자로 세상에 등장하실 때 첫 번째로 하신 일 역시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물세례를 받은 일, 곧 물에 잠기는 일이었다. 신앙생활은 한 단계 한 단계 더 깊은 은혜의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심해(深海)에 들어간다는 것은 높은 압력의 환경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과 같다.

물속에는 수압이라는 압력이 있다. 물이 깊어질수록 수압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강철로 만든 잠수함도 압력 한계선에 도달하면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만큼 수압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심해의 물고기들은 어떻게 높은 압력을 견디며 생존하는가? 종종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내장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 수압이 높은 물속에 있다가 압력이 낮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팽팽해진 몸통 기관들이 갑작스럽게 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해의 물고기들은 깊은 물속뿐만 아니라 수면 가까이에서도 내장이 터지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이는 일반 물고기들의 부레가 압력에 민감한 기체로 채워져 있는 반면 심해의 물고기들은 몸속에 체액(액체)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심해의 물고기들은 가득 찬 체액으로 물속 압력과 몸체의 압력을 맞춤으로써 어디서든 유유히 헤엄치며 생존하는 것이다.

자연에서 깨닫는 창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신앙생활은 마치 심해에 잠수하는 것과 같다. 거기는 아무 저항이 없는 피신처요 은신처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죄의 유혹과 핍박, 비난의 압력이 가중되는 곳이다. 터질 것 같은 수압에 못 이겨 수면 위로 튀어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기에 깊은 은혜의 물속에서 생존하려면 압력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압력을 이기는 것은 부피(기체)가 아니라 무게(액체)이다. 

속빈 강정처럼 겉만 번듯한 외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도의 눈물, 경건 훈련의 땀, 헌신의 피, 말씀의 수액으로 내면을 채워야 한다.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위기는 내적 채움 없이 외적 팽창만을 추구한 결과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로 인해 급변하는 세속 문화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저분한 속을 드러낸 채 터져버리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것 아니겠는가.

더 이상 홍수가 나면 금방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는 얕은 물가를 배회하지 말고 태풍과 폭풍이 몰아쳐도 미동하지 않는 영적 심해(深海)로 잠수하자. 세상이 짓누를 수 없는 하나님의 압력으로 나를 채우고 유유히 헤엄치는 것이다. 거룩한 잠수 타기! 그것이 팽창과 높아짐의 유혹이 만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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