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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사냐, 목회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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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냐, 목회자냐?

-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한국 선교가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하려면, 먼저 선교사의 정체성부터 확립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란 어차피 여기 저기에 다 속하게 되어 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이것 저것을 다 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구태여 이러한 선교사와 목회자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가? 생각도 들겠지만 반드시 그렇다. 느끼는 것은 현장의 삶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선교지에서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몸으로 체득하고 현장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선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을 정리하여 보았다. 철학이란 사역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고 척도이다. 철학은 사상의 기본이고 활동의 기초이다. 그래서 선교사로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교회도, 선교 헌신자도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키 없는 배처럼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떠밀려 다니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선교사이지 목회자가 아니다. 이것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사역의 방향을 잡는 척도이다. 많은 경우 선교사와 목사의 구분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수십 년 외국인 대상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통계를 보든지, 한국 선교는 대부분 교회사역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선교의 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선교의 핵심이고 진행이고 결론이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받는 무리가 생겨나고 일군이 양육된다.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가 일어나고……, 이런 의미에서 역시 교회는 선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여기에 매달리게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선교사로 보낼 때에 외국인 대상 교회 개척하여 담임목회하라고 선교사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아마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 1교회, 제 2교회, 제3교회, 개척하여 보고하고, 보고 받기를 고대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선교지에서 많은 경우 수십 년, 현지인 목회를 감당하는 것을 본다. 러시아에서는 선교사 교회에 4-50명 모이면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자랑한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툰 언어로 혹은 통역을 통하여 제한된 환경 속에서 매우 잘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구분된 역할 속에서 생각할 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목회를 하려면 국내에서 문화와 언어가 소통되는 곳에서 할 일이지, 무엇 때문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까지 와서 현지인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재정은 몇 배 이상 지출을 하면서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냉정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가 눈에 보이는 열매를 요구하고 교인 몇 명 모인다는 소식을 더 기대하면서 목을 조르기 때문에 교회 사역에 매달리고 있는 선교사들의 현실을 또한 생각한다. 파송 교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반동하는 선교사 혹은 불량 선교사로 낙인을 찍어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기 때문에 선교사는 어쩔 수 없이 춤을 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선교 철학의 문제가 아닐까?

어쨌든 선교사는 선교사이다. 필자가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은 영적 장군으로서 사역을 감당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고급인력, 비싼 투자에 비하여 얻어지는 결과는 매우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 속에서 목회자의 역할을 감당하지만, 선교사 본연의 사역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자기가 속한 지역과 민족과 나라를 바라보면서 감당하여야 할, 선교사 본연의 큰 역할이 있음을,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사는 선교사이지 목회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선교사역의 목표는 무엇인가? 교회개척을 통한 복음화이다. 개인이 구원받고, 사회가 질서를 회복하며, 정의로운 국가를 목표로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선교사가 전략적으로 사람, 즉 지도자를 키워내는 일에 전력투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치밀한 계획과 방법으로 지도자 양육을 진행하여야 한다. 훈련 받는 사람의 삶과 인격과 영성과 학문과 리더십을 목표로 전략적인 차원에서 훈련을 감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훈련된, 양육된 사람으로 하여금 교회를 개척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십 배의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서툰 언어에서 자유 할 것이고, 문화의 어려움에서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교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부분 자기의 자리를 아직 내 주지 못하는 것은, 과거 선교의 4P 원리, 즉 개척·양육·부모·나눔이라는 알량한 이론에 근거하여 때가 덜 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다른 할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선교 이론에 과거에는 잘 몰라서 어느 정도 동의하였으나 현장에 있는 지금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사역의 원리와 방법, 하나님 앞에서 선 자로 훈련해 낸다면 나머지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깨달아 스스로 터득하여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선교사는 정직하게 판단하고 사역에 임하여야 한다. 어떤 사연으로 현지를 떠날 경우에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질문하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재정을 투자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상황은 선교사 떠나면 교회도 1-2년 이내에 사라져 버리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교훈을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한국 선교가 살아남는 비결일 것이다. 선교사는 선교사이다. 그래서 선교사로서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폭탄을 던지는 것은, 현지 목회를 그만 이양하고 본연의 사역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넘겨줄 사람이 없다면, 탄식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대상자를 찾아 양육에 나서라고 감히 훈수를 두고 싶다.

선교 방송을 통하여 혹은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보고되는 사실은, 현장에 들어간 지 6개월이 안되어 교회를 건축하고 수십 명의 아이들과 성도들이 모인 현장을 사진 찍어 보내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또 염려도 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모이는 특수성과 ‘값싼 곳에 달러 가치를 활용하여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라는 생각, ‘저 정도의 일은 든든한 후원교회 하나 있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돈 있다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염려, 이제는 한국 선교의 미래를 보고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와 선교사의 철학과 정체성이 분명하여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른 선교를 소망하며…… .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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