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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천하는 크리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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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크리스천  

-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담임)
 

진정한 신앙은 실천으로 연결된다. 왜 열매가 없나?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봤냐?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

키에르케고르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후세에 짧은 이야기들을 많이 남겼다. 그 중 수학책 이야기가 있다. 수학책은 대개 앞부분에 문제가 있고, 뒷부분에 정답이 있다. 어려운 수학책은 앞의 문제가 반이고, 뒤의 정답이 반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는 뒤쪽의 정답을 본다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답은 알고 있지만, 뒤의 정답은 자기 답이 아니다. 언제 그 정답이 자기 것이 되는가? 실제로 풀어서 뒤의 정답과 같은 답이 나왔을 때, 그 답은 자기 답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정답을 안다고 그게 내 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삶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성경의 정답을 풀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실제로 삶을 통해서 풀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설교자를 과외선생으로 생각한다. 설교자는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설교자는 문제를 같이 풀어주는 사람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을 같이 풀면서 정답과 일치됨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종종 보수적인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 "목사님은 왜 성경을 읽어놓고 자꾸 다른 이야기만 하세요?" 일상의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답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실제적인 삶을 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정답만을 말하는 설교는 더 쉽다. 당연한 것을 힘차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외침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종 정답 설교도 필요하다. 정답을 알면, 훨씬 풀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답만 외친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풀린다. 풀어야 아는 것이다. 성령은 정답만을 외치는 영이 아니다. 우리에게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면서 문제를 풀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교회 안에서도 종종 의견 충돌이 있다. 문제가 있으면 풀면 된다. 어떤 때는 청년보다 장년의 갈등이 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왜? 서로 정답만을 외치기 때문이다. 정답은 교회 10년 다니면 다 안다. 뻔히 아는 정답을 침을 튀기면서 외친다. 서로 다른 가치의 정답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정답을 외치는 것이 잘난 것이 아니다.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정답을 관철시키는 것이 실력이다. 바리새인들은 정답을 알았다. 그러나 온갖 충돌, 상처, 싸움, 정죄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다. 단지 정답만 외칠 뿐이다. 

실제로 풀어나가는 실천의 사람은 점진성을 믿는다. 히딩크 이야기를 하나 하자. 2002년 4월 월드컵을 50일 앞 둔 때였다. 전 국민의 소망이 월드컵 16강이었다. 그에게 16강 진출 가능성을 물었다. "16강 진출의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1%씩 그 가능성을 높여가겠습니다." 지금 가능성이 50%니까, 매일 1%씩 가능성을 높여서 100%가 되게 하겠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실제로 이룬 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점진성을 믿는다. 하루아침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다.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성령은 바로 이 과정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 뭘 이루어본 사람의 말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말은 다르다. 정답을 아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답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실천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정답이 자기 정답이 되는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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