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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팔꽃이 필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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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이 필 때면  
     
- 이철환(동화작가) 
 

영희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영희 아빠는 공장 일까지 그만두고 영희 엄마를 찾아다녔다. 그해 겨울부터 영희 아빠는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동네 사람들은 영희 아빠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수군거렸다. 영희네 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영희 아빠가 영희 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길가에 노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아빠, 장미가 너무 예쁘다, 그치?" 

아빠는 영희의 말을 듣고 곧바로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아빠는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영희에게 주었다. 영희는 노란 장미를 코끝에 비비며 환하게 웃었다. 아빠와 함께 걷는 길이 영희는 행복했다. 아빠는 흘러내리는 땀을 연방 손수건으로 닦으며 힘겨워했다. 
"아빠, 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려?" 
"아빠가 더위를 많이 타서 그래…." 
웃고 있는 아빠 얼굴이 창백했다. 

학교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리 궁둥이 같은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도 있었고 풍선을 파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운동장 안에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서둘러 정문을 들어서는데 아빠가 걸음을 멈췄다. 
"영희야, 정말 미안한데 아빠 먼저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몸이 너무 아파서 그래." 
"지금?" 
"응." 아빠의 말에 영희는 눈물이 나왔다. 
"친구들이 엄마 아빠하고 점심 먹을 때 나는 얼마나 슬픈 줄 알아?" 
영희는 울면서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영희가 몇 번을 뒤돌아보았지만 아빠는 멀리서 영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영희가 쓸쓸한 운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잠든 아빠의 머리에 손바닥만한 거즈가 붙어 있었다. 영희의 울음소리에 아빠는 잠에서 깨어났다. 
"술 먹고 또 이렇게 다치려고 운동회에도 안 온 거야?"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머리를 다친 건 영희 때문이었다. 영희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아빠는 창살에 머리를 다친 거였다. 여섯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큰 상처였다. 아빠는 내의가 다 젖도록 피를 흘리면서도 영희가 모르게 하려고 땀을 닦는 척하며 학교까지 바래다준 것이었다. 

"아빠, 엄마는 언제 올까?" 엄마의 구두를 닦고 있는 아빠에게 영희가 물었다. 
"언제라고는 말할 순 없지만 엄마는 꼭 돌아올 거야." 
창가에 피어 있는 나팔꽃을 바라보며 영희는 엄마 얼굴을 생각했다. 

오래전 나팔꽃을 심으며 엄마는 영희에게 말했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나팔꽃은 힘겹게 창문 위를 기어오르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창가의 나팔꽃은 엄마 얼굴이 되어 영희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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