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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적 십일조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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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십일조 사용설명서

-  중세 교회의 평신도 개혁자 피터 발도 -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루터와 칼뱅 등이 종교개혁을 주창하기 전 유럽에는 카톨릭 교회의 인본주의적 신앙 노선에 반대한 교회 내 개혁 세력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성경적 교회 설립을 기치로 개혁 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지도자는 피터 발도(1140-1218)이다. 독일에서는 페트루스 발두스(Petrus Waldus) 피터 왈도(Peter Waldo) 피터 발도(Peter Valdo) 피에르 보데(Pierre Vaudès) 피에르드보(Pierre de Vaux) 등으로 불려진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산업도시 리옹에서 고리대금업으로 큰 부자가 됐다. 사회적으로 풍요롭고 여유 있게 살면서도 교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자 그의 모든 삶도 행복하지 못했다. 중세 당시 카톨릭 교회가 성수, 사제복, 성인의 날을 비롯한 수 많은 축제일, 연옥, 성인의 유골 및 순례 행위 등 인본주의적 신앙생활을 강조해 마음으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 발도는 조용히 산책하는 도중 옆을 지나는 무명의 방랑 시인이 부르는 콧노래를 듣게 된다. 그 시인의 입술에서 나오는 노래는 ‘어떤 부자 청년이 가족을 떠나 평생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았으며,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 는 내용이었다. 자기만 살찌기 위해 혈안이 된 중세 교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피터 발도는 방랑 시인의 노래에 싶은 감동을 받는다. 즉시 그는 수녀원에 있는 아내와 두 딸의 생활비로 약간의 부동산만을 남기고, 모든 재산을 처분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거지처럼 청빈한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하고 거리에서 검소와 빈약을 주제로 설교하며, 사람들에게 청빈한 크리스천의 삶을 가르쳤다. 두 명의 실력있는 성직자를 개인적으로 고용해 성경을 불어로 번역,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라틴어 문제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1170년경에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서 신앙 공동체, 즉 발도파를 만들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세속화에 염증을 느낀 이탈리아 신자들까지도 발도파에 가입했다.

그들은 수시로 전국을 순회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빈자의 복음을 적극 전파했다. 발도파는 둘씩 짝을 지어 남루한 양털 외투를 몸에 두른 채 맨발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체가 공유해 당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 당시 사람들은 발도파를 리옹의 빈자, 롬바르디의 빈자, 또는 신의 빈자들이라고 불렀다. 발도가 주창하는 빈자 신학에 동의하는 평신도들이 발도파에 다수 가입했다.

1179년 그는 로마로 가서 교황 알렉산더 3세에게 자신들의 교리를 교황청이 법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했다. 중세 카톨릭 교회 내 개혁적인 새로운 신앙 노선을 추종하는 교파 설립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로마 교회에서는 발도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연옥을 인정하지 않고 속죄를 위한 보속, 서약이나 유혈을 거부하는 등 로마 교회와 다른 주장을 편다는 죄목으로 1184년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발도파는 로마 교회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다 종교개혁 운동 때 칼빈주의나 신교의 개혁파(Reformed churches)에 흡수됐다.

12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교회에 소속된 21세기 평신도들은 상당한 수준의 신학적 실력을 갖게 됐다. 이제 12세기 발도파처럼 한국교회도 하나님 주신 물질과 몸을 바쳐 소외된 이웃을 돌볼 수 있는 모임이 적극 요청된다.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믿는 성숙한 성도들이라면 가난한 이웃을 하나님 주신 선물로 구제하고 적극적으로 돕는 신앙이 필요하다. 구약 시대에는 성도들이 교회에 바친 십일조를 통해 사회의 약자들인 과부와 고아, 나그네 및 레위지파의 생활을 적극 지원했다. 십일조 제도를 하나님이 제정한 목적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구제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교회 내 관리를 위한 비용으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성경을 믿고 그것을 삶의 원리로 따르는 교회라면 십일조 헌금은 모두 이웃을 위한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병원, 요양원 등을 교회가 세워 이웃을 섬기는데 십일조 헌금을 사용하는 것이 현대판 발도파의 개혁적인 역할로 보인다. 한국교회가 성경대로 십일조 헌금을 사용한다면 엄청난 발전과 더불어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침체되고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혹시 성경대로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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