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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아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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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게 다가 아니다

중세의 탁월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중세시대 교회에서 활동한 사람 중 가장 탁월한 신학자로 알려진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이탈리아 로마(Rome)와 나폴리(Napoli)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Roccasecca) 가족성(城)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당시 매우 부유한 아퀴노의 백작 란둘프(Landulph)이며, 어머니는 신앙적인 인물 테오도라(Theodora)다. 부유한 상위층 부모를 둔 덕분에 토마스는 불과 다섯살의 나이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보내져 최고급 교육을 받았다.

1239년 그가 14살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그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명문 나폴리대학교로 유학보냈다. 그곳에서 공부하던 중 도미니쿠스 수도회에 소속된 스승을 만나 깊은 영향을 받고 가족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런 그의 비전을 알게 된 가족들은 토마스의 결심을 돌리기 위해 강온전략을 모두 사용한다. 수차례 조용한 말로 달래기도 했고, 강제로 그를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로카세카 성 독방에 감금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1244년 파리로 건너가 도미니쿠스 회원이 되고 말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Koln)에서 당시 탁월한 신학자로 알려진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를 만나 신학을 연구, 1256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동시에 사제로 서품됐다. 아퀴나스는 나폴리(Napoli), 아나니(Anagni), 오르비에토(Orvieto), 로마(Roma), 그리고 비테르보(Viterbo) 등지에서 자신이 정립한 신학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며, 1259-1264년 사이에 ‘대 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마무리지으면서 그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 집필에 착수한다.

1269년경 파리로 다시 돌아온 그는 수도사제와 교구사제들간 논쟁에 말려들었다.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시게르(Siger)와 요한 페캄(John Pecham), 그리고 파리의 주교 에티엔느 탕피에의 철학적인 가르침에 적극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신학자들은 라틴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이른르슈드(이슬람 종교철학자), 마이모니데스(유대 철학자) 등의 저작들을 깊이 연구해 기독교의 유일한 경전인 성경을 무시하고 이성적인 철학에만 의존하는 잘못된 학문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아퀴나스는 이성을 중시하는 스콜라 철학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철학과 신학을 통합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성(철학)과 계시(신학)를 용어상으로 구분하면서도 그 둘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성도 계시도 원래 출발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는 있지만, 믿음의 근본인 삼위일체 하나님 같은 교리는 이성이 아닌 계시만을 통해 믿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인간의 기원과 운명은 이성이 아닌 오직 계시만을 통해 드러나며, 세상의 모든 것은 계시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구·토론돼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 동방·서방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토의하라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부름을 받고 리옹으로 가는 도중 테라치나 교외 포사 누오바(Fossa Nuova)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7일 4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한 신학이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읊조리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날 21세기는 이성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성 만능시대다. 심지어 사람의 이성적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그것을 무조건 신화 또는 조작된 이야기로 결론내리는 잘못된 경향마저 낳았다. 성경에 기록된 초이성적인 사건을 믿지 않고 신화로 취급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태도는 그것을 대변해준다. 그러나 토마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이성은 신학과 신앙을 이룰 수 있는 부분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들에게 주어진 이성적 능력으로 하나님 주신 우주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깨닫고, 밝힐 수는 없다. 이성을 초월한 사건들이 지금 이 땅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기독교는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도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 이성은 언제나 한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이성을 벗어난, 우리 이성을 통해 밝힐 수 없는 고급 진리도 얼마든지 세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편협된 이성만능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매우 넓게 보인다. 이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좁은 삶에서 탈피해 아퀴나스가 이루려고 노력했던 우주적인 사고를 갖도록 성경 속의 신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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