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이데올로기 교육과 성경 교육

첨부 1


이데올로기 교육과 성경 교육  

- 조병호 한시미션 대표·목사
 

예나 지금이나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말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지금의 '학군(學群)'이라는 말이 그 예이다. 학군에 따라 주택 가격이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영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학군'이다. 

바벨론 제국화를 꿈꾸던 느부갓네살은 나름대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제국 프로젝트는 이러했다.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각 정복지로부터 데려오는 것이다(단 1:4). 지식 통달, 학문의 익숙 등 청소년들에게 요구하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제국을 위한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바벨론은 요즈음 예로 고속도로 몇 개를 놓는 비용을 교육비로 사용한다. 

느부갓네살이 자신이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의 혈통 혼합 정책을 취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그의 선택은 '교육'이었다. 다니엘을 비롯해 끌려온 청소년들에게 채찍 대신 당근을 제공한다. 왕궁 같은 집을 짓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입히며,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을 먹인다. 그리고 이들에게 3년간 세상의 학문이란 학문은 다 집어넣되 철저하게 바벨론 왕 중심으로 그 모든 교육을 한다. 소름 끼치는 내용이다. 무서운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이데올로기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자신의 로봇으로 만들겠다는 무서운 생각이다. 생명보다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 많다. 느부갓네살이 미리 본 '교육 효과'였다. 

같은 시대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조약돌로 이를 깨뜨리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생각, 바로 예레미야의 생각이다. 그의 생각은 느부갓네살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제국 이데올로기 교육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무기 전쟁이 아닌, 교육 전쟁 그 한복판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왜인가? 가서 죽으라는 것이 아니다. 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한번 교육받으라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생각은 언뜻 보면 '친바벨론주의자' 같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생각을 가진 바벨론에 저항도, 자폭도 말고 순순히 끌려가라는 것이다. 가서 7년도 아닌, 70년을 지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70년이 아닌, 700년이 지나도 이데올로기 교육에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루가 1000년 같고 1000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생각이다. 

결국 예레미야의 이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 그리고 에스겔과 1만여명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생각은 승리를 거둔다. 이후 철옹성 바벨론이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같은 총리, 에스더 같은 왕비가 나온다. 또 학사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가 나온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춤추는 '바벨론 컨텍스트'에서, 모세 때 주신 '율법 텍스트'를 정확하게 공부한 결과이다.

칼보다 더 무서운 교육의 무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목을 죄는 느부갓네살의 이데올로기 교육도 단지 70년의 효과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믿으라는 성경 교육은 그 제국의 음모를 이김은 물론, 그 이상의 효과를 지닌다. 이것이 성경 교육의 효과다. 어떤 교육환경론도, 어떤 이데올로기 교육도 결국 성경 교육 효과를 뛰어넘지 못한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