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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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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   

- 문성모 총장 (서울장신대) 
 

미국의 여류 감독인 페니 마샬(Penny Marshall)이 1990년에 제작해 크게 성공을 거둔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s)’은 정신과 의사인 세이어 박사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레너드라는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이다. 그는 레너드를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다.

세이어 박사는 파킨슨병에 쓰이는 엘도파(L-DOPA)라는 약을 새로 개발해 레너드에게 임상 실험을 한다. 레너드는 그 약 덕분에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레너드에게 상태가 좋아진 소감을 물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삶이란 기쁜 것이고, 삶이란 자유로운 것이고, 삶이란 경이로운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삶의 가치를 너무 귀하지 않게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삶의 가치를 추구하려면 ‘왜 사는가?’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으며 살아야 한다. 오늘 현대인들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왜 사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은 들어 본지 너무 오래다. 그런 질문은 몰라도 되는 것이고, 그냥 살아도 되는 것이고, 태어났으니까 죽지 못해서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냐는 무책임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삶이 사명이 될 수 없고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동물처럼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것이 현대인이다.

따라서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도 의미가 없다. 돈과 출세와 명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천박하게 살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생각도 없고 더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저 육신의 감각과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부나비들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다.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그 다음의 질문에도 할 말이 없다. 삶에 기준이 없고 좌우명이 없고 인간됨의 고상한 자세가 없다. 어떤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중병을 앓고 있다. 살고 있으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을 헤매는 눈 먼 사람들과도 같다. 그러면서도 가장 잘났다고 착각까지 하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이 아닌가?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기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못하고 경이롭게 느껴지지도 못하고 귀하게 생각되지도 않는 현대의 ‘레너드’들이 군집해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레너드들에게 필요한 엘도파는 무엇일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삶의 고상한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처방약이 아닐까? 구원 받은 영혼이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어 새로운 하늘의 고상한 의로 무장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처럼 육신적으로 가난한 상태에서도 영적인 품위와 하늘의 비전을 가슴에 채우고 사는 멋있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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