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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귀여움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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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의 신학  

- 리처드 마우 풀러신학교 총장  
 

블로그에 처음으로 글을 올릴 때 '마이스페이스'(개인 블로그의 일종)에 대한 간략한 신학적 논평을 한 적이 있다. 나의 논평에 많은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 이젠 누군가 마이스페이스 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데일리모션'(동영상 공유사이트) 같은 관련 사이트들을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할 때가 되었다. 대중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신학자들은 많다. '해리포터'를 읽고 시트콤을 즐기며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는 세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한 연구가 있었다. 

최근 필자는 어느 기독교 잡지에서 유튜브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한 글을 읽었다. 해당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던 글쓴이(목회자)는 사이트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좋지 않은 자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보다 진지하게 신학적 연구를 해야 할 대상도 많다. 

가끔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유튜브에 접속할 때가 있다. 다수의 축구 골인 장면, 복싱 케이오 장면, 하키 경기 등 스포츠 관련 동영상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어린이들과 동물들에 관한 동영상이었다. 처음으로 몸을 뒤집는 아이, 첫 목욕을 하는 아이, 세 쌍둥이가 동시에 깔깔거리는 모습, 강아지들과 새끼 고양이들이 재롱을 떠는 광경 등. 유튜브에서 '귀여운'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관련 동영상만 19만1000여개나 되었다. '웹 카메라에서 춤추는 귀여운 십대'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귀여운 것들도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용서를 빈다'라는 유명한 에세이에서 옥스퍼드의 철학자 J L 오스틴은 대다수 사람들의 심미적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예술 철학자들이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지적하며 "아름다움을 잠시 잊어버리고 맛좋은 것과 뭉뚝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힌 바 있다. 새로운 화제를 찾는 신학자라면 여기서 힌트를 얻어 귀여움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G K 체스터톤은 '오소독시'에서 이에 관한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하나님의 사물 감상 방식은 성인의 그것보다 어린이의 그것과 더 흡사하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되풀이를 좋아한다. '또 하자'는 말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일상어다. 어린 아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시를 스무 번 읽더라도 처음 읽을 때만큼 즐길 수 있다. 하나님도 되풀이를 즐기신다. 아침마다 하나님은 태양, 매, 고래에게 "또 해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걸 보며 기뻐하신다. 

체스터톤의 말을 상기하며 창세기 1장을 읽는다. 하나님은 "보기 좋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단순한 것들에 대해 기뻐하신다.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는 것을 보실 때, 세 쌍둥이가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실 때, 강아지가 뜨개실 뭉치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실 때, 하나님은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어른이 귀여운 것을 보고 웃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어린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 같은 행동이기도 하다. 귀여움의 신학이 하나님의 '희열'(delight) 개념을 어느 정도 조명해 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번역: 예수로교회 김춘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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