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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정에서의 배움과 시너지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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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서의 배움과 시너지효과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담임)
 

오늘날 기독교 상담계에는 상담의 절실한 필요를 공감하면서도 스스로의 치유효과에 대해서는 지지론과 회의론으로 대립돼 만만치 않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또 상담의 접근방법에 따라 소위 세속 카운슬링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느냐, 비판적으로 통합하느냐, 아니면 거절하느냐를 둘러싸고 거의 전쟁에 가까운 분열이 이뤄지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발견되는 특이한 일치는 전문가인 상담자에게 의뢰하지 않는 ‘친구 상담’(peer counseling)이나 동질의 관심을 나누는 ‘지원 그룹’(support group)의 필요를 공감하고 있는 현상이다. 내가 자주 주변에서 받는 물음 중 하나가 옥한흠 목사님이나 홍정길, 하용조 목사 등과 교파도 배경도 다른데 어떻게 가까이 남부러운 우정 관계를 갖게 됐으며 이런 관계가 신앙의 여정에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실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형성된 이런 우정의 관계를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내 인생을 상담하고 중요한 결정의 고비마다 지혜를 경청할 수 있는 지원 그룹을 갖게 됐고 일종의 친구 상담의 효과를 누려온 것으로 느낀다. 우리 중 제일 맏형 격인 옥 목사님에게서 나는 솔직하고 투명한 자기 드러냄과 사역에 대한 집중의 고결함을 배웠고 이태웅 목사님에게서는 진지함과 정확함, 그리고 자기관리의 엄격함이라는 도전을 받았다. 홍 목사님에게서는 인생을 사는 깊고 넓은 멋과 맛에, 하 목사님에게선 끊임없이 타오르는 창조성의 불꽃에 감염돼온 듯하다.

나는 인간관계가 일방적일 경우 그런 관계가 우정으로 발전할 수는 거의 없다고 본다. 더욱 이 관계의 틈새에 지나치게 이기적 욕심이 작용할 경우 우정은 결정적으로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친구 사이에 아무리 서로에 대한 흠모와 존중함이 있어도 우정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이는 우정의 나무가 자라갈 수 없다.

특히 나의 경우 십수년에 걸친 유학과 이민 목회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정의 교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은총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그 바쁜 생활과 외부사역에 대한 각고의 절제에도 불구하고 “야, 얼굴 좀 보자”고 자주 무리를 모으는 옥 목사님의 챙기심이 이런 우정의 큰 그늘을 만드는 도량이었음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의도적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나는 목회의 예지를 모았고 설교의 칼을 예리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제자훈련의 가슴을 넓게 했고 인생을 바라보는 풍요한 전망을 선물 받게 됐다.

아울러 계획적이 아닌 역시 자연스러운 발전으로 동역의 축복들을 누리게 됐다. 강해설교운동, 제자훈련운동, 세계선교 협력운동, 구제-복지사역, 가정사역운동 등은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관심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젊은 시절 복음적인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나는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위해 머물면서도 유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기도하다가 어느날 새벽 QT를 통해 KOSTA(국제 복음주의학생운동)의 탄생을 이뤘고, 동역자들의 협력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을 섬기는 이 시대의 복음운동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우정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만나 사귀는가는 정말 중요한 삶의 사건임을 느끼게 한다. 이 모든 만남을 나는 ‘하나님이 주선하신 만남’(Divine encounter)으로 믿는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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