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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와이 미(Wh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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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미(Why me)?   

- 문성모 총장 (서울장신대)
 

어떤 목사님이 성경 공부 시간에 한 교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요?"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목사님은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 교인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해보고 대답하겠노라고 하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목사님은 이 문제를 놓고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성경도 읽고 주석 책도 뒤지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만족할 만한 마땅한 답을 얻지 못하고 하루하루 고민스러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왜 하필 주님은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을 제자로 선택하셨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고 예수님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문제를 놓고 또 묵상하는 중에 문득 위의 내용과는 다른 질문이 갑자기 마음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왜 주님은 나 같은 인간을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셨단 말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이 충격적이고 도전적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질문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주님은 왜 하필이면 나같이 부족하고 못나고 무능하고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을 종으로 부르셨단 말인가? 

그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것이 감격으로 다가왔다. 못다한 충성,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으름, 부족한 열심에 대한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명예와 돈과 스타 의식에 찌들어버린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이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추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고 가룟 유다가 바로 자신의 모습 같이 느껴졌다. 

가룟 유다에게 초점을 맞추고 해답을 찾았을 때는 주님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손가락을 돌려 그 질문을 맞추니, 주님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선택 받은 자의 삶에 허물이 있고 죄가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목사님은 그날 이후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자기로부터의 개혁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변하고, 그의 주위 사람들이 변하고, 그의 교회가 순수한 주님의 공동체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개혁을 역설하여 스타가 된 사람은 많으나 손에 얻어진 열매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는 루터와 칼뱅의 후예를 자처하며 교회를 개혁하겠노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교회는 개혁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에 의하여 개혁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룟 유다를 다른 사람으로 지목하고 찾아나선 사람들은 절대로 개혁의 답을 찾을 수 없다. 

높아진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노여운 얼굴에 사랑의 표정을 되찾고, 죄인을 구원하신 은총에 주체할 수 없이 감격하며 '나'를 먼저 개혁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개혁의 실마리가 풀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용기에 덕을 겸비하고 그 위에 은총으로 덧입고, 무릎 꿇고 고개 숙인 채 "내 탓이오"라고 외치며 감동을 주는 겸손하고 원숙한 개혁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종교개혁자 칼뱅 탄생 500주년의 해가 흘러가고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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