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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절망의 우물에서 희망 길어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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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우물에서 희망 길어올리기


 
며칠 전 한 신문사에 기고된 글을 보았다. 현 시국의 경제가 불황의 골이 깊고 가장 어려운 시점이라고 모두 입을 모으는데, 도리어 지금이 더욱 희망적이라고 낙관론을 펼친 글이었다. 우리 경제에 분명 어려움이 있지만, 그러나 유리한 점도 있다. 그렇기에 이를 십분 활용하면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니 경제에 문외한인 필자도 막연히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이것이 사실 우리네 경제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 듯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지금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러나 옛날을 생각해 보라. 그 옛날은 정말 살기가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살기 편한 세상이냐” 

평생을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그 안에는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었다. 수십 년 전 수돗물을 마시며 허기진 배를 채워본 적이 있는 분들이기에, 그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너무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릿고개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감히 공감하기 쉽지 않은 말일 수 있지만, 그러나 당신들의 말씀이 무엇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가족 치료의 한 기법 중에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바꾸어주는 치료 기법이 있다. 일명 ‘피사의 탑 쓰러뜨리기’ 라고 불리우는 이 기법은, 말 그대로 기울어져 있는 피사의 탑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쓰러뜨리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만 언급하며 우울해하는 내담자에게 비합리적이고 파격적인 대답을 함으로써 내담자가 스스로 ‘그 정도는 아니다’는 반응을 하도록 유도한다. 넘어지려는 것을 부둥켜안고 애써서 세우면 자꾸 넘어지려 하는데 도리어 더 넘어뜨리려 하면 오뚜기처럼 다시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기법이 이론적으로 심리를 분석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담의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얻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지지해주어도 주저앉아버리는 수많은 내담자를 거치는 와중에 오히려 대놓고 쓰러뜨리면 스스로 일어나려 하는 역동을 보면서 고안해낸 기법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기법이 절망적인 상황만 떠올리는 내담자라 할지라도 사실은 희망적인 면도 인지할 수 있는 눈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에 관한 beck의 이론을 보면 우울증을 겪는 이에게는 비합리적인 사고 체계가 있다고 한다. 이는 우울증을 겪는 내담자의 인지구조가 부정적이어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두세 가지 어려움이 있다면 그 외의 나머지 상황도 있는데 부정적인 상황만 극대화시켜 보기에 다른 면을 보지 못한다. 파란 안경을 끼면 온 세상이 파랗고 노란 안경을 끼면 온 세상이 노란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상담자의 역할은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울한 마음을 가다듬고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갇히지 않은 자들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정신적 지주와 같을 사도를 잃어버린 이후에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인 지체들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감옥에서 안식을 누렸을 지도 모른다. 끝없는 핍박과 고문의 선교의 여행에서 아마도 감옥은 그에게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고요한 감옥에서 울려 퍼진 바울과 실라의 찬양과 기도 소리는 쇠고랑에 매인 모든 이들을 자유케 하였다.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위대한 사도의, 참으로 흠모할만한 불사의 정신이다.

인생은 고해라고 우리는 수없이 절망적인 상황을 거친다. 특별한 병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만이 우울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울해할 수 있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때론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릴 때도 있다. 그렇게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면 뿐 아니라 다른 면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한 문이 닫히면 반대편에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절망만 가득한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는 불행하다고 여기는 삶조차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워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기 수련을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은폐한 채, 무턱대고 비현실적인 꿈만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위기가 기회라고, 우울한 면만 들추어내어 힘을 뺄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희망적인 면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음에도 최고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고귀한 축복을 찾으며 건강한 미래를 향해 나가면 좋겠다. 설사 지금의 상황이 조금 어렵다 해도 희망을 가진다면 반드시 길은 있다. 우리네 인생을 조금만 더 보듬어보자. 그리고 조금만 더 눈을 들어보자. 여기저기서 희망의 새싹이 돋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신앙과 가정 제공(www.f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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