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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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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 줄 아는 사람  

- 장경철 교수(서울여대)
 

몇 년 전의 일이다. 첫째 아이가 우리를 컴퓨터 앞으로 불렀다. 자기 동생이 싸이월드에 쓴 글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글의 제목은 '피아노'였다.

"피아노처럼 맑게, 피아노처럼 명랑하게, 피아노처럼 깔끔하게, 오직 정해진 음을 연주하는 피아노처럼 오늘도 나는 피아노처럼, 무의미하게 살아간다."

마지막 줄에 덜컥 겁이 났다. '얘가 요즘에 안 좋은 일이 있나? 무슨 어려운 일 때문에 고민이 있은 건가?'

다행이 별일 없이 지나갔기에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때 즈음이었다.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 가까운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른 학생이 자신의 질문을 추가했다.

"만일 교수님 따님이 이단에 빠지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것이다.

기다림.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사람만이 기다릴 줄 안다. 내가 소리를 질러 상대방을 바꿀 수 있다면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다그쳐봐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기다릴 수 있다. 강태공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오랫동안 기다린다. 그가 물속에 직접 들어가 물고기를 살살 달래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 누가 기다릴까?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이 기다린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내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에 기도하며 지켜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작정 기다려야 할까?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을 때 농부는 무작정 기다리지 않는다. 들에 나가 쟁기로 땅을 간다. 자신에게 하늘을 여는 능력이 없기에, 대신 땅을 뒤엎는 것이다. 메마른 날씨에 밭을 갈면 흙이 가루처럼 날린다. 농부는 콧구멍 귓구멍 입 안으로 흙먼지가 들어가도 땅을 갈면서 기다린다. 신기하게도 마른 흙에서 흙냄새가 나는 날이 있다. 비가 온다는 신호다. 비가 오기 직전엔 흙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농부에게는 비 오기 직전의 흙냄새가 우주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다.

한 사람의 변화를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기다려주신다. 베드로가 예수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게 된 것은 예수의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다. 베드로를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베드로를 무너뜨린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를 하나님께 맡길 때, 그 기도의 향기는 우주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가 될 것이다. 오늘도 농부의 기다림과 인내를 생각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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