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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WCC와 UN,그리고 기독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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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와 UN,그리고 기독청년  

- 조병호 목사(성경통독원 대표)
 

우리의 뉴스 언어에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의 이름들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 중 대부분이 유엔 산하 기구들이다. 그만큼 오늘날 현실 속에서 유엔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2007년 10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뮤얼 코비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와 공식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반 총장은 코비아 총무에게 "WCC가 유엔의 핵심 기반"이라며 WCC의 활동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반 총장의 이 표현에 과장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유엔 탄생의 배경에 기독교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 오히려 선교적 열정을 불태운 이들이 있었다. 바로 기독 청년 학생들이었다. 1844년 YMCA가 창립된다. 같은 시기 영미권 청년들 사이에 '학생해외선교자원운동(SVM)'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대학 시절 YMCA와 SVM 활동에 집중하며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한 한 청년이 있었다. 194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존 모트(John R Mott)였다. 그는 1895년 그의 나이 30세 때 스웨덴의 한 캐슬에서 '세계기독학생총연맹(WSCF)'을 결성한다. 세계 최초로 대륙 간 '연맹'을 결성한 것이다. 'world'라는 개념을 도입한 세계 최초의 공식 기구로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 모트는 1910년에 열린 '에든버러선교대회'의 의장이 된다. 이 대회는 명실공히 각 국가의 대표적 성격을 띤 선교사들의 모임이었다. 바로 이 대회가 20세기 국제기구들에 정신적인 기반을 제공했다. 국제기구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 좌옹 윤치호가 옵서버로 참석했다. 

에든버러선교대회 이후,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등 주제를 가진 모임들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1914)을 계기로 '평화' 문제가 핵심 화두로 등장한다. 이에 37년,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존재하던 모임들이 한곳에 모여 세계교회협의체 구성에 합의한다. 각 나라의 NCC 회원을 기반으로 협력과 평화를 증진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WCC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1차 WCC 공식 출범 대회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0년이 지난 후인 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치러진다. 이때 모인 각국 대표들의 5분의 4가 기독학생운동 출신들이었다. 

이미 합의했지만 아직 공식화 단계를 남겨놓은 WCC는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좀 더 평화를 위한 노력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교회는 6개의 평화를 위한 헌장을 만든다. 그리고 국제 간의 협력을 위한 헌장의 내용을 토대로 국제사회를 압박한다. 이러한 노력이 국제사회에 영감을 불어넣어, 45년 유엔 탄생의 배경이 된다. 

역사의 핵심에 기독 학생들이 있었다. 120여년 전 26세의 언더우드와 27세의 아펜젤러와 같은 청년들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광야에서 모세는 그의 나이 80에도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40년간 집중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수용했다. 22세기를 바라보며 한국교회는 이 땅 기독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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