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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기하기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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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기 위한 기도  

- 리처드 포스터 (국제레노바레 대표)
 

아내와 나는 그동안 많은 포기의 기도를 경험했다. 성경에는 이런 형태의 기도가 많다. 가장 극적인 것은 우리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19년 전 필자에게는 어떤 예언이 주어졌다. 예언의 전반부는 우리 가족과 관련된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격려가 되고 우리의 신앙 성장에 보탬이 되고 있다. 그 예언 메시지 후반부는 우리가 통과하게 될 모종의 깊은 시련에 관한 것이었다. 그 시련을 통과하면서 우린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효과적인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메시지의 후반부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으나 그후 하나님으로부터 비상한 가르침을 받았다. 내 삶속에서 몇 가지 아주 소중한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말씀을 오해했다. 당시 난 전국 그룹의 저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셔도 그것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포기기도 경험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린 10여년 이상의 따스한 우정들, 레노바레 사역의 탄생과 양육에 공헌했던 기반 외에도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런 결정들이 쉽게 이루어진 건 아니다. 기도하고 몸부림치고 울었다. 이것저것 저울질하며 마음이 수시로 바뀌었다. 

갈등은 포기기도의 필수 요소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정도로 갈등하셨다. 성경의 인물들도 고뇌와 몸부림의 순간을 겪었다. 독자 이삭을 포기해야 했던 아브라함,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할을 포기해야 했던 모세,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을 포기해야 했던 다윗, 장래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 했던 마리아 등. 

포기기도는 운명에 대한 항복이 아니기 때문에 몸부림은 중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우주는 닫혀있지 않고 열려 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사건의 결과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사역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주고받음이며 하나님과의 참된 대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전적으로 바르고 선하다. 포기기도는 그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다해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포기기도는 진심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희망찬 떠나보냄이다.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인생의 벽걸이 융단 뒷면에 뒤얽힌 실밥 같은 것뿐일 때라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그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무엇을 포기하든 우린 항상 승리자임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다 깊고 높은 영적 수준에로 초대하고 계신다. 거기에는 의로움을 위한 연단, 삶을 변화시키는 권능, 새로운 기쁨, 하나님과의 보다 깊은 친교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소한 비전을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우리를 위해 친히 예비하신 보다 놀라운 현실을 주실 수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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