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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예수의 방식으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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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방식으로 하라 

 가을철이 오면 교단들이 총회를 열고 총회장을 바꾸고 몇가지 교단살림을 점검한다. 그런데 요즘은 교단장 선거가 혼탁하여 그 우려가 깊어지다보니 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눈치가 빠르다.
 돈으로 표를 사고 팔지 말자는 생각을 하는 경우 제비 뽑기를 통해서 하자 하여 실험을 해보고 있다. 어떤 교단은 순번을 정해서 하기도 한다.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정정당당한 방법은 충분한 자기 정책성향을 말해주고 깨끗한 비밀 투표의 방식으로 지도자를 선택받는 것이 보편사회로 가는 모범이 된다.

 어찌 되었든, 교단총회에서 그 수장을 어떤 방법으로 선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출발의 지점을 한 번 되돌아 보아야 한다.
 예수의 출발점 말이다. 예수께서 어떤 방법으로 처세하시던가. 기독교는 예수가 기독교의 구세주가 분명하다면 예수의 방식에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

 물론 기독교가 당시의 로마제국의 위세와 유대교의 확대를 견디면서 생존을 지키려할 때는 여러 정치적 파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로마의 박해시대도 아니요 유대교의 심술이 기독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또 하나, 바울파, 게바파, 또는 예수파 라는 초기 교회의 혼선은 기독교가 공공성을 아직 준비하지 못했을 때의 현상이었다. 이제는 기독교의 교의가 정리되어 크게 두개의 신학이 생존력을 부여 받게 되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보수와 진보로 분류하는 그 이상은 신학적 당위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지상세계(상대세계)의 사유논리가 두개로만 기본 분류가 가능하니까. 그러므로 그 나머지는 아류가 된다.

 이제 기독교는 크게 두개의 사상적 배경을 인정 받고, 그 나머지는 흐름의 일치를 보아야 한다.
 교단장 선출 방법론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그 정도의 직분인 교단장 또는 총회장을 위해서 단 돈 몇 푼이라도 허비하면서 선거 운동을 하는 일이란 예수의 인생관에 의해 본다면 매우 유치한 것이며 배신적인 태도일 것이다.

 기독교는 다시 말하거니와 오늘의 기독교는 예수의 순수로 되돌아 가야 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교단과 교파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서두르라. 더 이상 자신을 속이고 예수를 속이는 짓을 거두고 교단들의 일치된 방향을 제시하고 특정 개개인들의 탐욕을 위한 장난을 청산해야 한다. 오로지 예수의 그 방법, 그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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