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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양말 신은 신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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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신은 신생아

대학졸업 후,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위해 아프리카를 향해서
떠날때 저희 부부는 결혼한지 한 달 밖에 안된 신혼이었습니다.
우선 제가 먼저 가서 정착키로 하고 아내는 6개월 후에 왔는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선물,아기가 있었습니다.당시 저는 수도도,전기도,전화도 없는 오지에서 학교를 세우고,날마다 원주민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하루하루 불러오는 아내의 배는 무척 고민스러웠습니다.
한국에 가서 아기를 낳을 것인가,아니면 이곳에서 낳을 것인가.
항공편은 임신 8개월쯤 되면 만일을 우려해서 임산부의 탑승을
거절한다고 하는데..
가장인 저로서는 빨리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형편이 여러모로 여의치 않았습니다.마음의 혼란스러움과 고민으로 이일을 깊이 생각할때,등뒤로
다가온 아내가 제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전 여기에서 아기를 낳겠어요.
이 나라 사람들도 다 아기 낳고 사는데요."

하지만 이곳은 환경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에이즈가 많은 나라요,병원은 없었고,한 100km 떨어진 곳에
작은 보건소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결국 계속 되는 분주함 속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날짜는 지나갔고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100km 떨어진 보건소를 향해 진통으로 신음하는 아내를 태우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길은 그야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움이었습니다.
보건소 카운터에는 굉장히 뚱뚱한 흑인 간호사가 있었는데,
도와달라고,내 아내가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말을 했더니,
그녀는 눈을 크게 꿈벅거리며 "정말이냐?" 고 몇번이나 확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다급한 저는,그녀를 똑바로 보며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아내가 아기를 낳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그러자 이 간호사는 호들갑스럽게 사람들을
부르며 뛰어다니는 것이었습니다(참고,이곳 원주민들은 절대로
안 뛰어다님)아내는 그 간호사의 도움으로 순산할 수가 있었습니다.한국과 달리 면회시간 외에는 병실에 못 들어가게 하는
철저함으로 자동차에서 쪼그려 자다가 다음날 아내의 병실을
방문한 저는 세상구경 나온 제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고맙고,도움을 준 사람들이 고맙고,세상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던 순간이었습니다.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신생아가 양말을 신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실로 뜬 빨갛고 노란 양말을.
휘둥그래진 제 눈을 보고 아내는 웃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그 뚱뚱한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제 어깨를 툭툭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브라더 데이빗,돈 워리.
이 보건소가 백인들에 의해 세워진지 70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백인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적은 없었지.
그런데 너는 달랐어.
양말?
그건 밤새 뜬거야.우린 형제니까."

제 아들은 한때 조상이 식인종이었던 그들의 손에 의해 태어났고,그들이 이름을 지어줬고,그들 틈에서 자랐습니다.
막힌 담이 헐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아! 전 아프리카를 사랑합니다.

글 황대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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