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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국은 과연 선교가 필요 없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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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과연 선교가 필요 없는 곳인가?
 
-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 교회사)는 지난 한 해 필리핀, 아프리카, 영국 등 세계를 돌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스스로 이 순회를 ‘세계순회 성령사역’이라 이름 붙였죠. 그는 이 순회를 통해 “신념과 주장을 좀 더 힘 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 교수가 가졌던 신념과 주장은 무엇일까요. “나의 거듭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배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글에 녹여 본지에 기고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기간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좇아 세계를 순회했던 모든 과정을 매주 화요일 소개합니다. 배 교수와 함께 성령이 운행하는 세계로 다시 떠나봅시다.

런던 히드로 공항

4월 6일 주일. 아프리카 가나를 떠나 영국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하던 아침은 때 아닌 눈보라가 날리는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4월이면 영국도 따뜻하다고 들었는데, 웬 때 아닌 눈보라?’ 안식년 사역을 출발한 이래 수개월 동안 줄곧 엄청나게 더운 지역만을 돌아다니다가 모처럼 맞이한 추위는 영국을 방문한 우리 부부를 향한 환영의 날씨라고 하기에는 좀 혹독하게 느껴졌다. 히드로 공항 제 5청사를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좀 혼잡한데다가 때마침 내린 눈보라로 인해, 착륙하고서도 거의 두 시간이나 비행기 안에 묶여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주일날 아침 발을 동동 구르며 대합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임 목사님 얼굴이 눈앞에 삼삼했다. 오후에 설교 스케줄도 있었던 터라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

그런데다 시간을 더 지체하게 된 일이 생겼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뚱뚱한 흑인 아주머니가 우릴 심사했는데, 한 마디로 ‘입국 부적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허, 웃기는 일이 생겼네?’ 나는 공항 출입하는 일은 이제 이골이 날 정도로 숱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던 터라, 별로 당황하지 않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문제는 영국에 들어오려는 우리에게 ‘왕복 티켓’(round ticket)이 없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는 정신이 바짝 났다. 그렇다. 여태 우리는 편도(one way)로만 다니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집사님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미리 그동안의 편도 티켓을 영국까지 다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 입국할 때는 항상 그 다음 행선국의 티켓을 예매한 상태에서 입국했기 때문에, 언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출입국 관리자에게 확신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비행기로 다음으로 가게 될 나라인 멕시코에 대한 예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한 날짜를 아직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지내다가 예약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입국 절차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에서 일을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마침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었던지라 나는 충분한 시간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이 흑인 아줌마가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상대적으로 더욱 부드럽게 그리고 더 고상한 영어 표현을 골라 써가면서 그녀를 설득해 나갔다. 마침내 그녀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의 여권에 도장을 찍으며 내뱉듯이 말한다. “하여간 당신들은 왕복 티켓을 만들어야만 할 걸요!”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녀에게 좋은 날이 되라고 말하며 여유 있게 그 곳을 통과했다. 가까스로 풀려난 우리 부부는 마침내 오랜 시간 기다리시던 임 목사님을 반갑게 만났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여행객들의 경우에 왕복 티켓이 없어서 입국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감사!

영국 선교

‘전통의 나라’를 떠올리는 대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즉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의 연합국이다. 기독교와 영국과의 인연은 꽤 오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주후 400년경 펠라기우스가 전도하여 기독교가 상당히 전파되어 있었다. 패트릭(Patrick)은 주로 아일랜드 동북 지방에서 수십 개의 교회와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캔터버리(Canterbury)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그레고리 11세의 파견으로 켄트(Kent)에 이르러 선교했으며, 콜룸바(Columba)는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Iona) 섬으로 가서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고 성결한 생활과 기적을 행하면서 많은 신자를 얻었다. 중세 후기 영국에서는 롤라드파(Lollards)가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 전야에 영국 출신 존 위클립(John Wyclif, 1324-1384)은 부패한 성직자들의 교권 남용을 비판한 인물로 유명하다. 교회는 부와 정치적 세력과 연합함으로 부패되었으므로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교황은 1377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처형시키려 했으나, 영국 왕후와 민중의 후원 때문에 손댈 수가 없었다.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은 독일이나 스코틀랜드에서의 양상과는 달라서, 주로 국왕 헨리 8세의 정치적인 원인으로 인해 야기(惹起)된 점이 많다. 신구교간의 치열한 쟁투를 거친 후에, 여왕 엘리자베스는 될 수 있으면 가장 많은 수의 국민들을 흡족 시킬 수 있는 교회 구조를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로만 가톨릭과 개신교적 요소를 병합(倂合)시키는 방법을 채택하였고, 이것이 오늘까지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16세기 초엽의 유럽은 개인 영지(領地)를 배경으로 한 지방분권적 봉건제도가 몰락하면서, 교회 절대권의 몰락, 신흥(新興) 시민사회의 등장, 민족의식의 강화 등의 급속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민사회와의 갈등과 대립 끝에 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쳐, 절대 왕정(王政)의 해체와 더불어 근대 시민사회를 향한 변혁을 낳았다. 또 그것이 17세기 청교도(淸敎徒) 혁명을 통해 명예를 가져온 영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적 시기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영국은 감리교의 창시자인 18세기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고향이며, 19세기와 20세기 선교의 원동력을 제시한 19세기 부흥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영국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는 교회 역사와 부흥의 발자취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동안 책속에서만 배우고 또 가르쳐 왔던 교회 역사에 대한 감격들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의 깊은 전통을 지닌 영국이기에, 영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대한 주제를 접하게 되면, 많은 분들이 ‘영국에 무슨 선교가 필요하냐?’ 고 묻곤 한다. 영국은 이미 기독교 국가이고 영국 어디를 가나 교회 천지이고 영국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크리스천인데 무슨 선교냐는 말이다. 언젠가 영국에서 선교하시는 어떤 한국인 선교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그분이 어떤 국제적인 선교사들의 회합에 나갔다가 다음과 같은 말로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살기 좋은 기독교 나라에서 살면서 무슨 선교입니까?”

그러면서 한국교회에서 보낸 후원금 받아서 호의호식하면서 빈둥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눈초리였다는 것이다. 영국이란 곳이 정말 이제 선교가 필요 없는 그런 곳인가?

그러나 사실을 들여다보면, 영국이라는 곳은 정말 효과적인 선교의 요충지라고 단언할 수 있다. 런던이라는 작은 지역에 전 세계 인종들이 집중적으로 모인다. 동구권에서 이민 오는 사람들, 탈북자들, 그리고 모슬렘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이 곳이며, 특히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유학생들은 세계복음화 완수의 중요한 채널이 바로 영국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한 선교사가 문화가 낯설고 언어가 다른 지역에 들어가 힘든 적응기간을 거치고 교회를 세워서 마침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자기 발로 영국에 찾아드는 수많은 피선교지역의 영혼들을 만나 사랑과 복음으로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게 하는 이 일처럼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영국이라는 나라, 그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 오신 나라인가! 경제적, 문화적인 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영적인 면만 보더라도 영국은 그동안 특별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17세기 청교도들의 빛난 개혁의 정신, 18세기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 그리고 19세기 부흥운동을 비롯한 여러 교회사적 발자취들이 영국 역사 속에 여전히 아로새겨져 있다. 19세기 선교의 세기(the Great Century) 때 영국교회는 단연 세계선교의 주역이 아니었던가!

영국교회는 왜 오늘날 그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영국적 상황 속에 어떤 하나님의 소명이 영국교회에 맡겨져 있는지를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내가 한 영국인 침례교회에서 이러한 내용으로 설교할 때, 성령께서 감동하심으로 회중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셨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나 영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 간구하였다. 예배 후에 몇몇 영국인 신자들과 차를 나누며 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노년의 여성도분이 내게 다가와 약간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정말 큰 은혜의 시간이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 때 이젠 정말 부흥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렇다! 영국교회는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영국교회는 흔히 잠자는 사자로 비유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교적 비전을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은 다시 영국교회를 일으키시고 세계선교를 위한 힘 있는 동력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누가 저 잠자는 사자를 흔들어 깨울 것인가? 이 면에 있어서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지닌, 어느 정도는 무모하게도 보일 수 있는, 저력을 사용하기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영국에서 사역하는 한인 선교사들과 한인교회들은 물론,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모두 하나 되어 영국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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