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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존 버리지(John Berridge)의 삶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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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리지(John Berridge)의 삶의 좌표

새해 벽두를 맞으면서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다면, 18세기 잉글란드 부흥기의 전도자들 가운데 노팅험 출신의 비교적 덜 알려진 한 인물인 존 버리지(John Berridge, 1716-1793)가 있다. 번연의 마을 벳포드 인근의 이버턴(Everton)에서 목회를 했던 그는 평소 '광대'라는 비난을 받을만큼 기인의 기질을 가졌고, 이것은 그가 직접 작성한 그의 유명한 묘비명에도 잘 반영되고 있다. '여기 ...의 유해가 묻히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신은 거듭났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죽어서도 그의 관심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가 1773년에 쓴 한 글에서 과거 자신의 교만했던 자아를 돌아보며 이제 오직 그리스도만이 자신을 통해 나타나기를 소원하는 현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0년전에 내가 가졌던 소망은 지금보다 훨씬 전에 뭔가 행세하는 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었고, 또 처음에는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 속 영적 악함과, 또 한편 하나님의 법의 영적 요구를 더 가까이 직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매일같이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나는 곤고한 자로다. 하나님이여, 나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이제 뭔가 된 사람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로 가라앉고 있다. 또한 아무 것도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전부이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자아도취의 사다리를 내려와 자아혐오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자신을 더 혐오할수록 나는 더 죄를 미워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죄가 이 혐오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자아도취를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면서 이런 고백이 가지는 영적 깊이를 다시 한번 헤아려보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원점인 '그리스도만'이 새롭게 주어진 날들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버리지는 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더 씻겨지면 씻겨질수록 우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더러움에 대해 더 민감해지게 된다. 이는 새 코트에 묻은 점 하나가 헌 옷에 묻어 있는 수백개의 점보다 더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더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자신의 모습에 대해 덜 부끄러워하게 되지만, 사람이 더 거룩해질수록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올 한 해, 이런 민감함이 내내 깨어 있는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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