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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아들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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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약속 - 김재원 -


난 아들 욕심이 참 많았다.

어려서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며
난 커서 절대로 엄한 아버지가 되지 않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엄한 면을 보였다.
밖에서는 누구나 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집에만 가면 얼굴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그래도 딸들에게는 무섭게 안 했는데 (딸들은 지금 다 커서
어릴 때 아버지가 퍽 무서웠다고 반박함)
아들에게는 더 엄하게 대했나보다.

이것 저것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니 아들은 아버지를 슬슬 피했다. 아
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조립 장난감이나 글라이더 만
들기 같은 기계 쪽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최소한 공대는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입만 열면 부담을 주었다
아들이 하도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초저녁부터 자거나 공부하라
고 책상에 앉혀 놓아도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였다.
나는 그런 아들이 보기 싫어서 아들의 책상을 내 방 책상 옆에
갖다 붙여 놓고 감시를 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데도 아들은 내 옆에서 딴짓을 하거나 하품을 해
대서 자주 야단을 쳤다.
자꾸 야단치니까 아들은 울기도 하고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사정도 했
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내 설 자리가 없었다. 아들도 딸도 모두
엄마 편이고.....
"그렇게 윽박지른다고 공부를 하겠어요? 제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지. 아이가 반항하거나 어긋난 길로 가면 잘 키우려다
더 망칠지도 모르니 그냥 놔둬요."
아내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내와 나는 다른 일로는 별로 다툴 일이 없는데 아들 교육 문
제로 종종 입씨름을 벌였다.

아들은 중3때까지도 공부를 하지 않고 빈둥대다 하마터면 공고에 갈
뻔 했으나, 간신히 부산 시 구역 밖에 있던 기장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인문계로 갈 수 있었다.
기장고에 입학하여 반장도 하고 성적이 좀 좋아서 버리려고 했던 기
대를 또 해 보았으나, 역시 제 버릇 개주지 않는다는 듯 아들은 공부
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를 어찌나 안 하는지 (아들은 제 딴에는 열심히 했다고 말
할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도무지 안 하는 것처럼 보였음)
절대로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서도 아들이 하는 꼴을 보면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어서 어느 날은 초저녁부터 자는 아들을 깨워
설교를 시작했다.
"잘하든 못하든 노력은 해야지. 어느 대학이 중요한게 아니라
최선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잔소
리라고 듣지 말고.... 너도 생각이 있으면 정신 좀 차려라.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대학입시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냐?
네가 공부하는 걸 보면 고3인지 중1인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들은 내 잔소리에 속이 몹시 상했던지 벽에 머리를 마구 찧
으며 울부짖었다. 벽이 쿵쿵 울려대도록....
나는 저러다 아들이 가출하거나 난동을 부리지나 않을까 겁이 났고,
한편으로는 늦은 밤이라 이웃집에 피해가 갈까 봐 가슴이 졸였다.
그렇게 나와 종종 신경전을 벌이던 아들이 결국에는 재수를 하지 않
고도 4년제대학 정보공학과에 합격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돈을 아껴 쓰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손재주도 좋은 편이지

내가 늘 걱정하는 것은 인성 문제였다.
제 엄마나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고 충고를 해
도 빈정거리곤 했다.그리고 항상 누나나 동생을 놀려대고 욕을 했다.
나는 아들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안 놓였다.
가족들이라 사이가 가까워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 그만이지만
친구들한테도 저렇게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군대 가기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싸워서 기분이 나빴던지 집에 와서
벽을 손으로 때려 벽에 구멍이 난 일도 있었다.
그날 나는 아들이 앞으로 잘못될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말로는 아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또 관심이 가는게 부모와 자식 사이의 끈끈한 관계였다.

어쨋거나 그렇게 걱정을 하게 만들던 아들이 군대에 갔다.
군대가는 날 큰 절을 넙죽해서 깜짝 놀랐는데 며칠 전에 아들
한테서 편지가 4번째 날아왔다.
<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주
지 않는데 저만 아버지 편지를 여러 통 받으니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
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아버지가 가끔 책상 위에 편지를
써 놓아도 ( 조양희씨의 '도시락 편지'를 읽고 나도 가끔 아들
에게 편지를 써 주었는데, 주로 교훈적인 내용이라 아들은 별
관심없이 보았다) 슬쩍 보고는 치워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
버지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대에 와서 비로소 가족
의 소중함과 부모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어
머니가 빨래를 해 놓으면 옷에 얼룩이 남아 있다고 투정을
했는데 여기 와서는 옷이 흙투성이인데도 갈아입지 못하고 지냅니다.
내가 집에서 참 편하게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찬도 그럭저
럭 먹을만 하지만 엄마가 끓여주는 국을 먹고 싶습
니다. 아버지 시골 일을 도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무리
히지 말고 쉬어 가며 하십시오. 100일 휴가 나가면 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아들 문현 올림 >

내가 아들에게 칭찬들으려고 편지를 쓴 것도 아니고 심심풀이 삼아
글을 쓰거나 편지글을 책으로 묶기 위해서 쓴 것은 더
더욱 아니다. 누가 시킨다고 편지를 쓰겠는가? 말 안 듣고 애 먹이면
아들이 한없이 괘씸하지만 돌아서면 또 애틋한 것이 모든
부모 마음이 아닐는지....
오직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그 한 마음 때문에 편지를 썼을 것이
다.

아들이 5학년 때인가 내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도시락 속에
슬그머니 넣어 두었는데, 그날 아들이 돌아와서 싱글벙글하며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선생님이 아버지 편지를 보고 칭찬을 해주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아들의
마음에 어떤 좋은 변화가 일어나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번에 아들이 군대에 가서 처음 주소가 적힌 편지를 보냈을 때도 아
들 앞으로 답장 한 통과 중대장 앞으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아들이
깊은 물가에서 노는 철부지처럼 여겨져서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래도 내가 손쉽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것 말고 뭐가 또
있겠는가?

운전을 배운지 3주만에 면허증을 따고 운전도 나보다 더 잘하는 아들
이 아무쪼록 군대에 가서 철이 들어오면 더 바랄 게 없다.
나는 아직 아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있다.
"문현아, 네가 4년제 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타고 있는 록스타를
너에게 줄 게."
그렇게 철썩같이 말했는데 정작 아들이 대학 들어갔을 때는 나한테
록스타가 없었다. 내가 운영하는 글짓기 학원이 온천장에서 해운대 신
시가지로 옮겨 오는 바람에 우리 집에 차가 두 대나 있을 필요가 없어
서 팔아 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하면 내가 한 약속은 꼭 지킬 생각이다.
아들은 운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군대 가기 전에 차를 날마다 몰고
다녔고 군대 가서도 운전병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다.
아들이 제대하면 중고 코란도라도 사 주기 위해 지금부터 매달 돈을
조금씩 떼어 모아두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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