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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추모사] “십자가의 피묻은 복음, 그리고 사랑에 붙잡힌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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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십자가의 피묻은 복음, 그리고 사랑에 붙잡힌 분”

사랑하는 김준곤 목사님을 그리면서 [2009-09-30 10:43]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가 30일 오전 고 김준곤 목사의 빈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저는 김준곤 목사님을 그리면서 김 목사님은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 사랑에 붙잡히고 십자가 사랑에 미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김준곤 목사님께서 환상 중에 십자가가 보이면서 그 십자가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김준곤 목사님은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만을 알고 십자가만을 전하고 십자가만을 사랑하는 십자가 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둘째로 김준곤 목사님은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전파에 붙잡히고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전파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이룬 민족 복음화 운동은 아마 길선주 목사님께서 이룬 민족 복음화 운동에 비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민족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그의 전 생애를 불살랐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셋째로 김준곤 목사님은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으면서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되었고 용서와 사랑에 붙잡히고 용서와 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1950년 10월 3일 전남 신안군에서 사랑하던 아버지와 사랑하던 아내가 공산폭도들에 의해서 총살을 당하는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고, 1982년 사랑하던 딸이 28살에 위암을 숱한 고통을 당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김준곤 목사님은 그런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분노와 증오의 사람 대신 용서와 사랑의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내를 총살한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은 앞장서서 그들을 죽이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결과 신안군의 주민들이 김준곤 목사님이 나타내 보인 용서와 사랑에 감동하며 대부분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9, 20).

김 목사님의 용서와 사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염소를 보내는 사랑운동을 펴 나아가게 되었고 기도와 사랑으로 보낸 염소들이 지금도 북한 땅 곳곳에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 말씀을 더 드리면 십자가 사랑과 십자가 사랑에 녹은 김 목사님에게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을 움직이는 놀라운 감화력이 충만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하나님께 헌신했고 교회에 사회에 귀한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불행하고 어두운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소금이요 빛이요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신 김준곤 목사님에게 주님께서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유족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은혜를 충만히 채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존곤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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