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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불타버린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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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천사 
 
나에게는 고모가 한 분 계셨다.
세상 사람들은 고모를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다 못 가도 저분만은 천당에 가실 거야."
라고 말했다.
그만큼 고모는 유별난 크리스천이었다.

고모가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된 이유는 그의 구제 생활에 있었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노인들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웃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길거리의 거지들을 한데 모아 먹이는 일이었다.
농촌이 바쁜 철이 되면 거지들을 대여섯 명씩 데리고 와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기도 했다.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거지가 한 명 있다.
아마 가장 오랫동안 고모를 따라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추운 겨울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을 자다가 옷에 불이 붙어서 심한 화상 입은 것을 고모가 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다리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듬해 겨울, 나는 초라한 초가집 단칸방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고 거리는 조용했다.
가끔 바람에 나뭇잎 날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열 한시쯤 되었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웬지 무서운 생각이 엄습해 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마당 가운데 흉측스런 옷차림에 목발을 짚은 그 애가 서 있는 것이었다.

무서운 생각은 사라졌지만 갑자기 나의 머리 속은 깊은 갈등으로 가득 찼다.
들어오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가라고 해야 할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침묵이 계속 흘렀다.
나의 눈을 바라보는 그 애의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제발 나한테 가라고 하지 마세요.
날씨는 너무 춥고 전 갈 곳이 없어요.
그냥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만 있을 게요.
제발 들어오라고만 해 주세요."

하며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이 성 프란체스코의 이야기에 나오는 문둥이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고모네 집에 가지 왜 여기에 왔니?
어서 고모네 집에 가 봐."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서서히 목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고모가 오셨다.
고모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봉기야, 어젯밤에 그 애가 죽었단다.
모닥불 옆에서 자다가 옷에 불이 붙어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외치니까 이웃집에서 뛰쳐나와 물을 부었는데 그때는 이미..."

고모는 어젯밤에 철야기도 가느라 집을 비웠었고, 마침 대문이 꼭 잠겨 있었다는 것이다.
내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성 프란체스코는 문둥이의 손발을 씻겨 주고 목욕까지 시켜 주었는데, 난 그를 불에 타서 죽게 하다니...

그날 밤, 마당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안돼"

"구석에 쪼그리고 있을게요."

"안 된다니까."

"제발 들어오라고만..."

죽어버렸다던 거지 애는 쉬지 않고 내 가슴에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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