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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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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물 위에 던지는 교회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이 시대에 최고 문장가를 뽑으라고 한다면 이어령 교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예술, 역사, 철학 등 그분이 지니고 있는 고전적 지성과 현대적 예술 감성은 가히 경탄을 일으키게 한다. 이 교수님은 어린 시절, 집안에 머슴을 여러 명이나 둘 정도로 상당히 부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1950년, 어느 달빛이 환하게 비치던 밤, 뭔가 부스럭 소리가 나서 할머니가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봤다. 이웃집에 사는 가난한 아저씨가 쌀을 훔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걸 할머니가 보시고는 머슴들에게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이 서방, 김 서방 빨리 나와 봐요. 내가 저 김씨 아저씨한테 오늘 낮에 쌀 몇 가마니 가져가라고 했는데 얼마나 바빴는지 이 저녁에 왔구먼. 혼자서는 못 가져 갈 테니까 자네들이 지게로 한 가마니씩 지어다 주게나.” 쌀을 훔치러 왔던 김씨 아저씨는 간이 콩알만 해 가지고 벌벌 떨었고 그런 그에게 할머니는 쌀을 서너 가마니나 더 지어다 주게 했다. 그러니 김씨 아저씨가 얼마나 죄스러우면서도 고마웠겠는가.

만약 그때 할머니가 모질게 박대하고 내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일이 있고 몇 달 후에 6·25전쟁이 일어나서 부자들을 다 잡아다 인민재판에 넘겨서 죽이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 쌀을 훔치러 왔던 김씨 아저씨가 인민위원장이 되었는데 그가 이 교수님의 할머니만큼은 살려야 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여 가족 모두가 생명을 보존하였다는 것이 아닌가. 

전도서 11장 1절에 보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구제 행위에 대한 관용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즉 이스라엘 랍비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물 위에 식물을 던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은 보상이 전혀 기대될 수 없는 행위가 아닌가. 

구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구제를 하면 반드시 여러 날 후에 다시 그에 대한 보상을 찾는 것이 당시의 격언이고 잠언이었다. 이처럼 사랑과 나눔, 구제의 실천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같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미래사회야말로 사회적 비영리단체(NGO)가 이끌어가게 될 것이며, 교회 역시 비영리단체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교회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모습보다는 식물을 물 위에 던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사랑과 나눔, 구제의 실천을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홍보해야 한다. 그럴 때 사회적 지탄과 비판의 수렁에 빠져서 실추된 이미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소외 계층을 향하여 식물을 던지면 반드시 더 많은 영혼을 얻게 되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물 위에 던진 떡이, 여러 날 후에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생명을 살리는 밑천이 되어줄 것이므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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