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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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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가능성과 축복이 나를 비껴 갈 때,
그때 나는 차마 아픈 소리도 못 냅니다.

돌을 힘겹게 밀고 옮겨 보지만, 내일 아침이면
그 돌은 다시 제 자리에 와 있고 차라리 그럴 때면,
굴러가는 돌 밑으로 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었어도 눈을 뜨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야 하고,
웃어야 하는 이유가 나에게는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내 좌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밀고 올라가야 하는 돌의 무게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무거운 돌의 무게를
가볍게 하심으로 내게 찾아오심이 아니라,
나의 믿음의 무게를 크게 하셔서 넉넉히 그 돌을 밀도록 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는 은혜" 라 부릅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 때문이라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늦은 오후시간에, 여기저기서 투-두-둑 떨어지는
낙엽들의 불협화음은, 우리 인생여정을 재촉하는 심장박동 소리인 듯 합니다.

요즈음, 지구촌에서 들려오는 소리며,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답답하다 못해 호흡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지금, -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구촌은 거대한 사막과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로,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와 같이, 방향도 목적도 없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는 듯 합니다.

더우기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인양, 모두들 그렇게 냉소적이며 공격적일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상처가 너무 깊고 많은 탓이려니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삭막한 세상을 떠날 수도 버릴 수도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상처투성이로 메말라 있는 저 영혼들과 멍든 지구를,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들이 힘들때 우리도 힘들고, 저들이 살아야 할 터전이 사막이라면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사막은 참으로 지독스럽게 무섭고 고독하고 위험한 공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만일에 사막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없다고 한다면,
저들은 목마름 때문이 아니라, 절망 때문에 곧 삶을 접을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 중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홍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걸음 걸음 중간에 솟아오르는 은혜의 오아시스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상처, 실망, 한, 아픔들이 어떻게 아물고 회복이 되겠습니까?
은혜의 오아시스를 만나면, 주님의 위로와 격려와 만져주심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주님의 참된 은혜는, 사막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의 고통을,
오아시스의 기쁨으로 잊어버리고 초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오아시스를 자주 만나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자주 그리고, 오래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할겁니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망치 마십시요.
사막마져도 아름답고 축복된 장소로 만드는 길은, 오직 주님의 마르지 않는 은혜 뿐 입니다.
비온 후에는 숲이 더 울창하고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그리 아니할지라도.

- 서정호 목사님 설교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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