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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자리를 깨끗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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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를 깨끗하게 

- 장경철 교수 (서울여대)
 

나는 아침마다 머리카락을 치운다.

여자 넷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방바닥에서 머리카락이 자주 발견된다. 식구들이 다 대머리가 되길 바랄 수도 없는 일이기에 내가 종종 머리카락을 줍는다.

처음에는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정리한 뒤 머리카락이 떨어진 것을 보면 짜증이 났다.

“내가 청소하기 전에 머리를 빗어야 할 것 아냐!”

그러나 내가 뭐라고 한다고 해서 바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아예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주워 옮기는 일을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었지만 이 취미 덕분에 집안도 제법 깨끗해졌다.

머리카락을 주워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카락을 잘 주우려면 방바닥과 머리카락 사이의 틈새를 잘 노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다섯 번 이상 시도해야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주울 수 있다.

간혹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도 있다. 머리카락을 주워 쓰레기통에 다녀온 사이 그 자리에 새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여기에 와서 머리를 빗었어?”

나중에야 그 머리카락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었다. 그날도 머리카락을 옮기기 위해 일어서고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몸을 움직이면서 일으킨 바람 때문에 구석에 숨어 있던 머리카락이 슬쩍 날아올라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순식간에 여러 개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어쩐지 진공청소기를 정리하고 난 뒤에 꼭 머리카락이 한두 개 떨어져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내가 청소기를 정리하면서 일으킨 바람이 주범이었구나.

돌이켜 보니 내 삶과 학습의 여정은 내가 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발견해온 과정이었다. 한때는 내가 당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고 살아가는지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내 허물인데도 무책임하게 남 탓만 했던 것,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내 삶의 자리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면서 살고 싶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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